白馬江(백마강) -高敬命(고경명)-
病起因人作遠遊, 東風吹夢送歸舟.
병기인인작원유, 동풍취몽송귀주.
[인인(因人)]; 사람으로 인하여, 남의 권유로,
[작(作)]; 짓다, 만들다, 여기서는 떠나다,
근심이 일어나니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보라 하네,
동풍에 실려 와서 배는 돌아가 버렸네.
山川鬱鬱前朝恨, 城郭蕭蕭半月愁.
산천울울전조한, 성곽소소반월수.
[울울(鬱鬱)]; 빽빽한 모양, 울창한 모양,
[소소(蕭蕭)]; 쓸쓸한 모양,
산천은 울창하나 왕조의 한을 머금고 있다,
성곽은 쓸쓸히 반달은 수심을 띠고 있네.
當日落花餘翠壁, 至今巢燕繞紅樓.
당일낙화여취벽, 지금소연요홍루.
[당일(當日)]; 그때, 그 당시,
[취벽(翠壁)]; 푸른 절벽,
[요(繞)]; 얽히다, 두르다, 여기서는 맴돌다의 뜻,
그때 떨어진 궁녀들의 혼 푸른 절벽에 남아 있고,
지금은 제비들만 붉은 누각을 감싸 돌며 날고 있네.
傍人莫問溫家事, 弔古傷春易白頭.
방인막문온가사, 조고상춘이백두.
[방인(傍人)]; 곁에 있는 사람, 주위 사람들,
[온가(溫家)];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溫祚王)의 왕가(王家),
세상 사람들이여 왕조의 멸망을 묻지 마라,
옛일을 생각하고 슬퍼하면 젊음도 금방 백발이 되느니라.
작자 소개
① 고경명(高敬命)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는 의병장이기도 했다. 자(字)는 이순(而順)이고 호(號)는 제봉(霽峰)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에서 모집한 의병을 이끌고 금산 전투에 참여하여 싸우다가 전사했다.
② 시와 글씨, 그림 등에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문집으로 「제봉집(霽峰集)」이 있다.
작품해제(作品解題)
① 고경명의 시는 웅장하고 호쾌하지는 않을 지라도 청신하고 고매하여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쾌하고 깨끗한 느낌을 갖도록 해주며, 풍류정신이 깃들어 있어서 여유를 한껏 보여주는 작품이 많다.
② 사람들의 권고로 먼 여행을 떠난 길이 바로 백마강(白馬江)이었는데 역사의 현장에 데려다 놓고 배는 돌아가 버리고 만다. 이제 시인은 과거 백제의 멸망 현장에 남게 된 것이다. 왕조의 멸망을 아는지 모르는지 울창한 숲은 그날의 한을 머금은 듯하고 쓸쓸한 성곽과 반달은 수심을 띠고 있는 듯하다. 절벽에 떨어졌던 낙화암의 혼은 아직도 푸른 절벽에 그대로 있는 듯한데, 무심한 제비는 붉은 누각만을 감싸 돌고 있을 뿐이다.
③이 작품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 승연(承聯)과 전연(轉聯)이라고 할 수 있는데, 모두 대연(對聯)으로 되어 있다. 산천과 성곽 그리고 절벽과 제비는 묘한 對句를 이루면서 그날의 원한과 슬픔을 함께 일깨워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무조건 슬픈 느낌만 주지 않는 것은 시의 표현이 깨끗하고 고매하기 때문이다.
④ 마지막 연(聯)은 시인의 여유와 풍류정신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후세의 여러 사람들이여 백제의 이야기에 대해서 너무 연연해 하지 말 일이다. 과거의 일에 너무 집착하여 가슴 아파하면 쉽게 늙어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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