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

고의진(高義鎭)의 연자시 감상문

高 山 芝 2011. 6. 2. 20:24

 

연자시에 관한 감상문은 연자시의 저자인 고만거의 증손자인 익진 오진 의진 3형제분이다.

이분의 감상문은 모두 한자로 되어 있으나

9세손 고영국의 번역본을 탑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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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내가 전에 교훈(敎訓)하는 법을 가형(家兄)에게 묻기를 ‘자식(子息)을 교훈(敎訓)하는 것과 후손(後孫)을 교훈(敎訓)하는 것이 다릅니까?’ 하였더니, 가형(家兄)께서 ‘다르지 않다. 교(敎)라는 것은 수신제가(修身齊家)의 도(道)에서 나오지 않았던가? 훈(訓)이란 것은 충군(忠君)효친(孝親)의 의(義)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 하시기에 나는 이제야 자식(子息)을 가르치는 법(法)이 곧 후손(後孫)을 가르치는 것이요. 후손(後孫)을 가르치는 것이 또한 자식(子息)을 가르치는 법(法)이라는 것을 마음에 자각하였다. 어찌 그 사이에 두 가지 법이 있겠는가?

 

옛날 우리 증조부(曾祖父)님께서 조부(祖父)님을 교훈(敎訓)하실 적에 오언(五言) 고풍(古風) 오십(五十)구(句)를 친제(친할 親 지을 製)하시되 훈사(訓辭)가 엄밀(嚴密)하시고 지면(紙面)에 친서(親書)하시되 자획(字劃)이 정상(바를 正 자세할 詳)하게 하셨으니 이것은 후손(後孫)들로 하여금 항상 보고 자경(自警)하면서 오래도록 잊지 못하게 한 뜻이 아니겠는가?

조부(祖父)님 돌아가신 후(後)로 옛 상자 속에 휴지(休紙)와 섞여 넣어 두고 전연 몰라 버린지가 80년이 지났는데, 다행(多幸)히 어느 날 상자를 뒤져 펼쳐 보다가 발견(發見)하니 이것이 바로 증조부(曾祖父)님 유고가 아니겠는가?

 

어찌나 반갑고 기쁘던지 눈물이 쏟아졌다.

글씨도 방금 곧 쓴 것 같고 지면도 그대로다

이것이 아마도 귀신(鬼神)이라도 있어 간직해 두었다가 자손(子孫)들에게 전(傳)해 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이 든다.

정성(精誠)스럽게 읽고 새겨보니 마치 슬하(膝下)에서 받은 것처럼 교훈(敎訓)의 법(法)이 오십(五十)구(句) 속에 다 들어 있다.

성인(聖人)을 기다려도 의심(疑心)치 않고 귀신(鬼神)에 물어봐도 의심(疑心)이 없는 것은 아마 이 시(詩)로써 비유(比喩)하겠구나.

다만 지극히 의아스러운 것은 증조부(曾祖父)님 훈자시(訓子詩)만 있고 조부(祖父)님 훈자시(訓子詩)는 없으니 혹시 유실(遺失)된 것이나 아닌가 하고 생각되기도 하나, 조부(祖父)님의 뜻을 추념(追念)해보면 이 증조부(曾祖父)님 시(始)하나로도 넉넉히 우리 대대로 본받을 교훈(敎訓)의 법(法)이 되지 않겠는가?

우리 증조부(曾祖父)님 제손(諸孫)은 감(敢)히 이 시(詩)를 경애(敬愛)하여 만분(萬分)의 일(一)이라도 본받지 않을 수 있으랴?

 

 

 

시(詩)

유문(遺文)이 비로소 이 해에 발견(發見)되었으니

먼지 낀 상자 속에 몇 해나 잠겨 있었던고?

세사(世事)는 어언간 유수(流水)간이 흐르건만

가성(家聲)은 오히려 고풍(古風)이 감도네.

훈사(訓辭)는 참으로 여기에 있는데

준칙(準則)은 어찌 먼데서 구하는가?

아! 우리 후손이 진즉 알지 못하여

늦게나마 감개(感慨)하여 방심(放心)을 바로 잡네

 

 

********** 제(第) 오(五) 증손(曾孫) 의진(義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