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두번째 맞는 성탄절이다
성탄예배를 드리러 함께 가자고 하자 내년부터 가곘다는 하시모토(橋本)
지난번엔 십일조운운하더니 이번에는 주일헌금 핑게를 댄다
전군이 다음달 5일 귀국한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한국에 지사를 내는데 선발대로 나간다.
식사를 마친 후 강집사가 저녁식사 초대를 하자 사장부부와 선약이 있다면서 거절한다
그냥 가는 것을 목사님께 인사하고 가라며 붙잡았다
피난시절 어려웠던 이야기를 임석윤 목사님이 들려주신다
" 고향이 청천강 이북인 목사님은 중학교 때부터 자취를 했다. 9. 28 수복으로 국군이 그곳까지
올라오자 북한군은 청천강을 따라 퇴각하기 때문에 쌍방 교전이 자주 일어났다
밀대로 부터 북한군이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교인들을 비롯한 우익 인사들이 피하면서 퇴로를
열어주어 교전을 피한 적도 있었다. 하루는 교회의 풍금을 고치고 있는데 북한군이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교회의 청년 8명과 각기 쌀 1말 씩 메고서 다른 교회를 피난길을 나섰다 .
어머니와 함께 십오리 정도 걸어서 찾아 간 그 교회도 피난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멀지않은 곳에 이모가 살고 있어서 어머니를 이모집이 부탁하고 청년 8명을 데리고
평양의 산정현교회까지 갔으나 또 다시 밀려서 남쪽으로 피난 갈 수 밖에 없었다
대동강철교가 부서져서 발을 동동구르고 있다가 철교 아래 가설 된 줄사다리로 간신히 대동강을 건넜다
예성강에서는 기차를 탓는데 군용이라고 내리라고 했다. 암담했지만 미군이 다시 타라고 해서
기차를 타고 피난 서울 영락교회까지 도착했다. 피난길 중 가장 큰 장애물이 강이였다
다리가 부서진 강을 만나면 큰일인데 중공군이 참전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한강을 건너서 인천으로 갔다
대한청년단의 도움으로 동양방직에 취직 낮에는 그곳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부두에서 막일을 하여
돈을 모았다. 당시는 전시 상태라서 남자들은 길을 가다 붙잡히면 방위군에 편입되었다
목사님도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계박사를 마나려가다가 붙잡혔다.
사람들이 다들 먹을 것을 갖고 국민학교로 집결하고 있었다
따라가면 굶어 죽을 것 같아서 집에가서 먹을 것을 갖어오곘다고 하자 신분증을 맡기라고 했다.
신분증이라곤 교인증 뿐이였다. 교인증을 맡기고 겨우 도망나왔으나 계박사와 약속한 시간이 24시간이나
지나버렸다. 하나님께 이번에 화물선을 태워주시면 다시는 이적을 바라지 않곘다고 기도했다는 목사님
다행히 바이오린을 연주하는 계박사의 주선으로 미국화물선에 승선할 수 있었다
월미도에서 만톤급 화물선을 타고 계박사의 추천으로 반장이 되었다는 목사님. 부산에서 입항을 못하게 하여 제주도로 갔으나 제주도는 만톤급 배가 입항을 할 수가 없었다. LST선이 올때까지 24일간의 해상생활.
교회로 보내기 위해 교인임을 증명해야 하는 자리에서 아는 전도사님이 모른 척하여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꼤지만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서 일반인들과 함께 각 면으로 배정되었으나 목사님은 면에 있는 교회로 배정 오히려 피난생활을 편하게 하였다며 웃는다. 교인들만 간곳은 너무 많은 교인들이 몰려서 천막을 치고
불편한 생활을 하였다
강집사댁에서 칠면조요리와 돼지햄요리등으로 맛있는 식사 대접을 받았다
황집사의 남편 웨스턴 버거는 무척 순진한 사람이다
돌아오는 길 집으로 전화를 하였다. 집사람에게 직장을 주신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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