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산과 동북3성에 숨쉬고 있는 민족의 얼을 찾아서 - 5 ]
- 한국문인협회의 역사기행 -
高 山 芝 시인
통화(通化)에서 일박을 한 후 버스는 집안(輯安)을 향해 출발하였다. 신체호(단제)가 집안현(輯安縣)을 한번 보는 것이 김부식의 고구려사를 만번 읽는 것 보다 낫다 했던 집안시는 동남쪽으로는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백산(白山市).·통화시(通化市).·통화현(通化縣)과 경계하고 있다. 통구(通溝)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집안(輯安)은 1965년에 집안현으로, 1988년 5월에는 집안시로 승격되었다. 신석기시대부터 인류가 살기 시작, 고구려문화의 발상지이자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던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였던 국내성(國內城)이 바로 집안시(輯安市)에 있다. 제2대 유리왕 22년(AD 3년)에 졸본성(卒本城)으로부터 천도하여 제20대 장수왕 15년(AD 427년)까지 고구려의 수도였던 집안시(輯安市)에는 200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적 국내성 성벽이 시 중심에 남아있고, 위나암성(환도산성)과 광개토대왕비와 장수왕릉 등 고구려의 고분 약 1만 2000기가 집안시에 있다
제2대 유리왕은 주몽의 첫째부인 예씨소생이다. 주몽의 둘째부인으로 고구려 건국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졸본부여 출신의 소서노는 자신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할 수 없자 비류와 온조를 대리고 남쪽으로 내려가서 백제를 건국하였다. 주몽왕 서거 후, 유리왕은 국력이 커지자 비좁은 졸본성(오녀산성)을 이유로 졸본부여의 호족들과 결별을 위하여 국내성 천도를 계획하였다. 삼국사기는 유리왕의 국내성천도를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유리왕 21년 봄 3월 제사에 쓸 돼지가 달아났다. 왕이 장생설지에게 명하여 뒤쫒게 하였다. 그는 위나암에 이르러서 돼지를 붙잡아 우선 그곳에 기르게 하고 돌아와서 왕에게 말했다 “위나암은 자연이 준험하고 토양이 오곡을 재배하기에 적합하며, 산짐승과 물고기 등 산물이 많으니 그곳으로 도읍을 옮긴다면 백성의 복리가 무궁할 뿐 아니라 전쟁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 이에 그 해 9월 유리왕이 몸소 국내 위나암에 가서 지세를 보고 마음을 정한 다음, 다름해 10월(AD 3년)에 도읍을 옮기고 위나암에 성을 쌓았다]
돼지 시(豕)자에 지붕 면(宀)자를 결합하면 집 가(家)가 된다. 신정일치 시대였던 당시 나랏무당이었던 장생설지가 돼지 점을 처서 점지한 땅이 국내성 이다. 돼지가 있으면 뱀과 같은 해로운 짐승이 근접할 수 없음 또한 사람이 살기에 좋은 땅으로 판단하였을 것이다. 앞에는 노령산맥을 뒤에는 압록강을 등지는 배산임수의 천혜의 길지 국내성의 장군총에 도착했다.
집안(集安)에 남아있는 만 2천여 개의 묘지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완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능으로 거대한 크기와 빼어난 조형미를 갖춘 장군총은. 밑변의 길이가 32미터, 높이가 12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피라미드형 방단계단적석묘(方壇階段積石墓: 돌을 계단형식으로 네모지게 쌓아올린 형태의 무덤)로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길이가 5.7미터인 엄청난 크기의 화강암 1100여개를 계단식으로 쌓아올렸다. 정면은 국내성(集安)을 바라보는 서남향이며 네 귀가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석실 안 석관의 머리 방향이 53도로 북동쪽에 있는 백두산 천지 (白頭山 天池)를 향하고 있다. 장군총의 맨 위층인 제7층의 사방 변두리에서는 난간 구멍이 있는데 피라밋 위에 제사를 지내는 종교적인 시설로 보이는 일종의 향당 (享堂)이 있었던 흔적이 보인다. 이는 고대 동이민족이 세운 나라에서 유행하던 묘제의 하나이다. 수많은 고구려 고분들 가운데 이 장군총에는 특별한 점이 두 가지 있는데 바로 이 적석총을 둘러싼 12개의 받침돌(호석 護石)과 주변의 배총 (陪塚)이다. 받침돌 혹은 호석은 돌을 쌓아 올린 무덤이 빗물이나 기타 외부압력에 인하여 밀려나거나 무너짐을 방지하기위해 세운 것으로 3개씩 4면에 총 12개가 있는데 십이지신상의 기원으로 여겨지기도 하며 현재는 그 중 하나가 소실되었다. 배총은 현재 하나만 남아있는데 과거에는 이 장군총의 네 모서리 방향에 있어 피라미드의 스핑크스처럼 수호신을 상징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배총은 고인돌 형태로 남아있다.
광개토대왕의 대를 이어 고구려의 대정벌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장수왕(20대)의 릉이 장군총이라고 중국은 선전하고 있지만, 427년 장수왕(394-491/재위 412-491)은 고구려의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옮겼다. 평양성으로 천도한 후 65년(491년 사망)이나 더 살았던 장수왕의 시신을 옛 수도인 국내성으로 옮겨서 장례를 치루었다는 역사기록은 아직까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특히 인근에 있는 고구려고분군(高句麗古墳群) 오회분오호묘(五盔坟五号墓)등 이미 알려진 고구려 무덤들과는 전혀 다른 피라미드 형식으로 축조된 장군총은. 내부에 벽화 마저 없을 뿐더러 출토된 유물 또한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장군총은 기원전 고대 동이족이 세운 제단일 가능성이 크다. 장수왕의 첩의 묘로 소개하고 있는 고인돌 모양의 배총은 선사시대의 유적처럼 보였다. 장군총을 관람하고 내려오자 고구려 28대 왕 박람관이 있다. 705년의 고구려 역사, 28대를 거치면서 18명의 왕릉이 집안(輯安)에 있다. 아직 개관 전이라면 굳게 닫혀있는 박물관의 뒤쪽으로 돌아서자 보도위에 널어논 과일이 무심한 햇볕에 건조되고 있다.
‘고구려 28대 왕 박물관’ 이라는 간판때문에 광개토대왕 릉으로 옮겨가는 나의 마음은 심란했다.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시작된 역사 왜곡. 이곳에 ‘고구려 28대 왕 박물관’을 설치한 배경에는 과거 고구려 땅이었던 한수이북(북한땅)까지도 자신들의 영토라는 뜻이 함축되어있었다. 고구려사에 대한 ‘동북공정’의 주장은 다음 6가지로 요약된다. (1)고구려는 중국 땅에 세워졌다. (2)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다. (3)고구려민족은 중국고대의 한족이다. (4)수·당과 고구려의 전쟁은 중국 국내전이었다. (5)고려(왕건)는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가 아니다. (6)한반도 북부, 북한지역도 중국역사다.
요동반도에서 평양성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지키는 고구려의 박작성(泊灼城)에 관한 문헌기록은 고구려와 당(唐)과의 전쟁 기사에 처음 등장한다. 645년(보장왕 4) 당태종은 고구려와 전쟁에서 참패한다. 3년 후 648년 당태종은 대규모 전함을 이끌고, 설만철(薛萬徹)로 하여금 3만여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의 박작성을 공격케 하였다. 설만철이 압록강을 거슬러 박작성 남쪽 40여리 지점에 진영을 갖추었다, 당시 박작성 성주(城主) 소부손(所夫孫)이 1만여명의 군대로 대항하여 성을 지켰으며, 고구려 장군 고문(高文)이 오골성(烏骨城)과 안시성(安市城)의 군대를 이끌고 출병했으나 패하였다. 박작성의 위치가 압록강 입구에서 100여리 떨어진 강 북안의 험준한 산을 끼고 있는 지세라는 기록으로 보아, 그 위치는 현재 중국 단동시(丹東市) 동북 15km 거리에 있는 호산산성(虎山山城)이 틀림없다. 산성 안쪽의 큰 우물터 및 성벽의 견치석은 고구려성의 전형적인 모습이고 이 우물에서 나온 통나무배는 서력기원 무렵의 것으로 판명되어 이 성이 고구려성임이 더욱 분명해졌다.
그럼에도 1469년(명나라) 탑호산성을 이곳에 만들었다는 기록을 근거로 호산산성은 명나라 때 축조된 성이다는 논리를 펴고있는 중국은 1990년 이 산성터에서 발견된 성터가 진·한(秦·漢) 시대의 성이라면서 90년 중반 호산산성 복원공사를 끝냈다. 원래 만리장성은 전국시대부터 쌓은 고립된 성들을 진나라와 명나라때 연결하여 놓은 성벽이다. 이전까지 중국의 모든 사료는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하북성 발해만 연안의 산해관이라`고 기록되어 있다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산해관에서 발해만을 가로질너서 약 1000km 떨어저있는 호산산성이 만리장성 동단이라고 엉뚱한 주장을 중국은 하고 있다.
- 2014년 10월 8일 주간한국문학신문게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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