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압과 학살]
국민당군에 의해 학살당한 타이완 시민타이완 내의 병력만으로는 시위의 진압이 어렵다고 판단한 천이는 주민들을 상대로는 타협적인 제스처를 보이며 시간을 벌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장제스에게 대륙에 있는 국민혁명군의 조속한 증파를 요청했다.
국공내전 중이었음에도 장제스는 폭동이 정부 전복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는 천이의 보고에 따라 3월 8일 증원군을 타이완에 파견했다. 국민혁명군의 증원군이 도착한 1947년 3월 8일부터 타이완에서는 대대적인 유혈진압이 시작되었다. 당일 새벽 두 시에 타이완 북부에 투입된 국민당 군 21사단은 곧바로 타이베이시에 진입해 시위대 진압을 개시하였다
이로 인해 본성인 사상자가 속출하고 본성인 출신 지식인과 2.28 사건을 수습하고자 모였던 주민대표자들 상당수가 살해, 체포 또는 실종되었고 일부는 도망쳤다. 진압은 10여 일간 대대적인 학살로 이어졌고, 본성인(本省人) 약 3만 명이 살해, 실종된 것으로 추정된다. 3월 8일 가오슝(高雄), 3월 11일 지룽(基隆), 타이난(臺南), 3월 12일 자이(嘉義) 등에 진입한 국민당의 경찰과 계엄군은 타이완 본성인에 대한 무차별적 학살과 약탈을 자행했다
이러한 대규모 살육과 약탈은 3월 17일 국방부장 바이충시(白崇禧)가 대만에 도착하여 조율에 나선 후 3월 21일이 되어서야 진정되었다. 진압과정에서의 학살과 약탈로 인해 타이완은 섬 전체가 초토화되었고, 장제스는 '2.28 사건 처리 위원회' 인사들의 체포를 명령하고 위원회의 구성원 상당수를 처형했다. 결국 2.28 사건은 5월 16일 장제스가 공식적으로 사태 종료를 선언하면서 일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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