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지 시인
‘인생은 네박자’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우리의 삶 속에는

동(東)과 서(西)만 있는 것이 아니라네.

남(南)과 북(北)만 있는 것도 아니라네.

 

제로섬 게임에 집착하는 나와 너 때문에,

사회는 양극화로 빠르게 변해가네.

삶을 전투로 바라보는 사람들 때문에,

너와 나 사이가 멀어지고 있다네.

 

 

사람들은 모른다네.

하늘에서 내려와

지극히 낮은 곳에 머문 당신을.

 

동서남북·상천하지(上天下地)

살아있는 모든 것을 친구라 부른 당신.

낮고 천한 그곳에 소망의 길을 내고

나의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임을,

십자가 보혈로 깨닫게 하시네.

 

이 땅에 평화, 평화로 오신 당신.

당신은 나더러 우리가 되라 하네.

우리 되어, 우리 되어 살라 하네.

우리 되어 어우러져 네박자로 살라 하네.

                       - 네박자 인생 -

 

삶의 형태는 다양해지고 있지만 생각이 뒤따르지 못한데 우리 사회의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당쟁에서 밀리면 3족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했던 시절의 불안감이 우리 문화의 곳곳에 배어 있습니다. 선의의 경쟁 상대를 우리는 적수(敵手)라고 표현합니다. 사랑의 경쟁상대를 연적(戀敵)이라 합니다. 선의의 경쟁에 원수 적(敵)자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제로섬 게임의 비극이 아직까지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영어는 Rival(경쟁상대)과 Enemy(적)라는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Rival은 River(강)에서 파생된 단어로 같은 강가에서 함께 생활하는 공존(共存)의 의미가 내재된 단어입니다.

서양의 대표적인 놀이기구인 주사위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합니다. 우리의 윷놀이는 네 개의 윷이 어우러져 각각의 모양에 따라 공동체의 운명이 바뀌게 됩니다. 스스로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주사위에 비해 자신의 행위에 따라 속한 집단의 운명이 달라지기 때문에 우선은 이기고 보자는 정서가 우리에게는 강했던 모양입니다.

일제 36년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피(彼)·아(我)가 확실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고착화된 양분법으로 우리 사회는 지금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정치인 중에 다수를 점유하고 있는 율사(律士) 출신들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율사들은 옳고 그름의 판단에 익숙한 사람입니다. 피·아 구분이 확실한 군인들과 유사한 사고의 틀을 갖고 있습니다. 과거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데 집착해 미래를 잃어버리고 있지 않나 걱정이 앞섭니다. 똑같은 바둑도 수순에 따라 이기고 지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 이 두 단어를 해체해 같은 모음, 같은 자음끼리 묶다보면 ‘삶’이란 단어가 만들어집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복잡해질수록 삶의 방식도 다양하게 바뀌고 있습니다.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는 미래를 열어갈 수 없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2000년 전 이 땅에 오셔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문 그 분이 지금 나에게 한 박자만 늦추라고 합니다. 한 박자 늦추고 상대방을 바라보라 합니다. 그리고는 우리 되어, 우리 되어 어우러져 살라고 합니다.

 

  -  금강일보 2014년 10월 2일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