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사람들을 위한다 하면서도
법대로 율법대로 살아가고 있다네
법대로 율법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법이 곧 정의이고 선이라 주장하네

누구나 사람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누구도 사람들을 위하지는 않는다네

법대로 율법대로 세상을 살다보면
율법에 구속되어 죄인으로 화(化)하나니
법으로 구별하고 율법으로 차별하는
두려움과 공포가 세상을 지배하네

율법에 길들여져 살아가는 삶이란
보이는 것에 대한 남의 눈이 두려운
보여주기 위한 익숙함인 것이라네
보여주기 위한 위장된 선이라네

남을 위해 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구별하고 차별하며 자기의를 드러내며
자기만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네

위선과 탐욕이 땅 위에 가득하자
소외되고 약한 자, 천대받은 가난한 자,
피보다 진한 눈물, 하늘 보좌 움직였네

하나님의 한 의가 세상에 내려왔네
낮은 곳에 임하사 속죄양이 되신 예수,
나를 위해 십자가 산 제물이 되었다네

나의 죄 구속코저 대속제물 되신 당신
누리고 누리라네, 구원함을 누리라네
받은 은혜 누리며 세상 속에 뛰어들어
복된 소식 전하라네 땅 끝까지 전하라네


   
 
‘인간은 사회적 돌물이다’라는 말엔 ‘인간은 관계지향적 동물이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관계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그중 가장 중요한 건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나를 택정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다. 관계는 보는 시각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긍정적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들어쓰시는 하나님은 소명을 통해 사역을 이루신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상생의 관계다. 도움을 주고받는 거래가 끊임없이 계속되는 인생의 수레바퀴는 사랑의 윤활유에 의해 굴러간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랑 중 가장 고귀한 건 은혜의 빚을 갚는 사랑이다. 자신이 받은 은혜의 채무를 상환하는 행위가 사랑의 형태로 나타나는 사회야말로 건강하고 성숙하다. 그러나 받은 은혜를 망각하고,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선행으로 의의 레버리지(Leverage)를 늘리려는 탐욕 때문에 세상이 어지럽다.

양적 완화를 통한 천문학적 부채 속에 잉태된 혼돈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았다. 부채를 확대 재생산해가는 사회는 끝내는 도산할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훈련을 통해 발굴해 열배, 백배의 이윤을 남김으로 은혜의 빚을 상환하는 성찰이 필요하다. 재능이 사명으로 바뀌면 은혜의 빚을 상환하는 통로가 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오프라 윈프리는 그녀의 자서전에서 네 가지 사명 선언을 했다.

첫째,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졌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둘째, 다른 사람보다 더 설레는 꿈이 있다면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 셋째, 다른 사람보다 아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넷째, 다른 사람보다 더 부담이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부담이 아니라 사명이다. 이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긍정적으로 바라볼 때 사명을 발견하게 된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자’라는 바울 사도의 말씀이 생각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