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자수필(戀子隨筆)

< 원죄(原罪) >

高 山 芝 2017. 9. 7.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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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산지의 戀子隨筆] 원죄(原罪)

데스크승인 [ 2면 ] 2017.08.08 최일 기자 | choil@ggilbo.com 

 

    < 원죄(原罪) >

                           고 산 지

동산의 열린 실과를 구분하여

경계(境界)를 그으신 여호와 하나님

 

각종 나무의 열매는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 먹지를 말라

그 열매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경계(警戒)하였네

 

사탄의 꾐에 빠진 아담과 하와

탐심을 절제 못해 경계를 넘었네

 

필요한 모든 것 그들에게 주었건만

욕심의 경계를 지키지 못했네

 

부르신 후 기업을 약속하신 하나님

그 약속 믿음으로 성취하라 하였는데

 

“바라는 것의 실상이 믿음이요

보지 못한 것의 증거가 믿음이니

믿음으로 바라보며 정진하라” 하였는데

 

경계(境界)에 이르지 못해 경계(警戒)를 늦췄네

 

“네가 선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네 문 앞에 엎드려서 너를 원하니

너는 죄를 다스리라” 하였는데

 

문도 없고 담도 없는 마음의 수성(守城)을

지키지 못했네, 지켜내지 못했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뇌까리며 뇌까리며 다짐했건만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경계를 범(犯)했네, 경계를 넘어섰네

 

아우구스티누스는 악(惡)을 행하는 의지는 인간에게 있지만, 선(善)은 오직 신(神)만이 수행할 수 있으며, 신의 은총 없이는 인간은 어떤 선도 수행할 수 없는 존재라는 인간의 원죄설(原罪說)을 주장했다. 그는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자유를 남용해 선악과를 따서 먹은 결과, 인류 전체가 그 죄를 짊어지게 됐고, 아담의 타락으로 인류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돼 죄의 본성에 물들게 됐다. 인간은 죄를 범하는 자유는 남아있지만, 죄를 범하지 않는 자유는 없다. 멸망과 죽음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스스로의 힘으로는 죄로부터 해방될 수 없게 됐다”라고 주장했다.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원죄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고 흙으로 아담을 빚으신 후 아내인 이브와 함께 축복의 땅인 에덴동산에서 살게 했다. 그러나 뱀의 유혹에 빠진 이브의 권유를 받고, 선과 악을 구별하는 능력의 선악과를 아담은 따서 먹었다. 선악과(열매)를 하느님이 먹지 못하게 했는데 이것을 따서 먹음으로 불순종의 죄를 범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최초로 지은 인간의 범죄다. 이로 인해 모든 인간은 원죄를 짊어지고 태어났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아담은 힘든 노동을 하면서 고통과 죽음을 알게 되는 삶을 살아갔다.

 

인간은 자신에게 결핍된 대상을 갈구하는 동물이다. 이 같은 욕구가 욕망에 의해 확대 재생산, 경쟁을 통해 문명을 발전시키는 힘도 되지만 때로는 경계를 넘어서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법과 도덕, 관습의 경계는 무질서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도 하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동기가 되기도 했다. 어떤 일을 하지 말라 하면 그 일을 더 하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능적 욕구를 포함해 탐내 구하는 욕망을 불교에선 번뇌의 근원으로 보고 경계한다. 감각적인 욕망의 번뇌로부터 마음이 자유로워지고, 존재하고자 하는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어리석음의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마음의 경지를 득도 또는 해탈의 경지라 부른다. 경지에 이르면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자유란 신(神)만이 누릴 수 있는 신의 영역, 신의 경지다. 경계(境界)란 어떤 기준에 의해 분간되는 사물의 한계, 또는 구분되는 지역의 한계, 그리고 수행의 결과로써 도달한 경지라는 경계의 사전적 의미를 되새겨 보면서 경계를 넘나들며 신처럼 자유롭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이 바로 원죄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