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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산지의 戀子隨筆] 운화(雲華)
데스크승인 [ 2면 ] 2017.11.07 금강일보 | admin@ggilbo.com
< 운화(雲華) >
- 고 산 지
창공 떠돌던 하얀 구름 깃
지상에 내려앉아
주렁주렁 차실(茶實) 곁
차꽃으로 피었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만질 수도 없는 희미한 홀황(惚恍)
나무와 풀 사이
내게로 다가서네
인색하거나
티 내지 않고
복잡하지도
어렵지도 않은
순백의 꽃잎에 싸인
구름의 정화(精華)
무서리 영롱한
황금의 꽃술
하늘 빚어 논 현주(玄酒)에
생명 우러나와
차 한 잔에 기운이 솟고
차 한 잔에 기분이 좋네
꽃과 열매가 1년 만에 상봉하는 차나무는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다. 10~11월 피는
흰빛을 띤 다섯 장의 차나무 꽃은 백의민족을 상징하며, 군자에게는 지조를, 여인에게는 정절을 나타낸다. 녹차가 지닌 쓴맛[苦], 단맛[甘], 신맛[酸], 매운맛[辛], 떫은맛[澁] 등 다섯 가지 맛은 다섯 장의 꽃잎에 담겨 있는데, 이 다섯 맛은 너무 힘들게도[澁],
너무 티내지도[酸], 너무 복잡하게도[辛], 너무 편하게도[甘], 너무 어렵게도[苦] 살지 말라는 인생의 비유이기도 하다. 동백나무 열매와 닮은 차나무 열매는 구름의 정화인
운화(雲華:차꽃)가 영롱하게 핀 차나무 꽃을 지켜보면서 익어간다. 우리 선조들은
차나무 열매를 딸을 시집보낼 때 예물로 보내기도 하고, 며느리에게 씨를 선물하기도
했다. 또 혼례를 마친 신부가 친정에서 마련한 차와 다식을 시댁의 사당에 바치는 예식은 직근성(直根性)의 차나무가 옮겨 심으면 쉽게 죽기에 개가하지 말고 가문을 지키라는 뜻이 담겨 있다.
한반도의 두 배에 이르는 면적과 남한의 인구를 가진 중국의 윈난은 20여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윈난은 이미 당나라 때부터 주요한 차 생산지였다. 윈난성에는 ‘차수왕(茶樹王)’으로 불리는 약 1700년 된 키가 큰 차나무와 약 2700살인 차나무가 있다. 또 하나의 차나무 원산지는 인도다. 이 유래설은 차나무의 탄생설화가 뒷받침하고 있다. 중국 선종(禪宗)의 시조인 달마대사는 수행 중 졸음이 몰려오자 졸지 않으려고 눈꺼풀을 베어
버렸고, 땅에 떨어진 눈꺼풀에서 싹이 돋아 차나무가 됐다. 이 설화에는 차나무에 관한 두 가지 중요한 정보가 숨어 있다. 차나무 고향이 달마와 관련 있음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차나무의 특징과 성분에 대한 신호다. 달마대사는 남인도 향지국(香至國)의 셋째 왕자로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중국에 들어왔다. 차나무가 눈꺼풀에서 태어났다는 얘기는 차의 성질인 잎과 성분을 아는 사람이 만들었을 것이다. 찻잎 모양을 보면 사람의 눈꺼풀과 유사하다. 다른 나무의 잎 중에도 찻잎과 비슷한 것이 있지만 달마의 눈꺼풀과 톱니가 있는 찻잎은 아주 닮았다. 찻잎에 잠을 깨우는 카페인 성분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서진(西晉)의 장화가 편찬한 ‘박물지(博物志)’에 나올 만큼 중국인들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차가 유입된 것은 흥덕왕(興德王) 때 대렴(大廉)이 당으로부터 차씨를 가져다가 왕명으로 지리산에 심은 뒤부터다. 신라 때는 차를 불공을 드리거나 예폐(禮幣) 대용으로 삼았다. 신라·고려를 통해 차는 승려와 상류계급에 많이 유행했으며 고려 때는 궁정에 다방(茶房)이라는 차를 다루는 관청이 있었고, 사원에는 다촌(茶村)이란 차를 바치는 마을이 생겼다. 연등회(燃燈會), 팔관회(八關會)의 진다례식(進茶禮式) 등 연중행사에는 반드시 주과(酒果)와 차를 애용했고, 외국 사신을 영접할 때도 의례히 진수(珍羞)와 더불어 차를 대접했다. 또 귀족과 부호 사이에 차그릇을 다루는 풍습이 성행해 이것이 고려자기 발달의 한 원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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