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표작품 ]

< 겸손과 오만 > - 연자시편 - 한국문학신문 2019년 2월 27일 자 칼럼

高 山 芝 2019. 3. 2. 21:21

< 겸손과 오만 >

 

인간의 불완전성 믿는 사람들

겸손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지요

 

돌다리 두드리며 이웃을 살피며

점진적 개선을 추구하지요

 

인간의 이기심 믿는 사람들

시장의 자율에 살림을 맡기지요

 

경쟁의 장애물 통과한 이기심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작동하지요

 

인간의 가능성 믿는 사람들

오만한 시각으로 세상을 보지요

 

사회개조 가능하다 생각하는 사람들

급진적 개혁을 추진하지요

 

인간의 이기심 불신하는 오만이

시장을 규제하고 규정하지요

 

경쟁 없어지고 차별이 사라지면

모두가 열등한 평등사회 되지요

 

좌파와 우파라는 말이 탄생한 역사적 배경은 프랑스 대혁명이다. 당시 프랑스 의회의 좌석 배치는 급진적인 사회 변혁을 추구했던 자코뱅당은 의회의 왼쪽, 온건한 개혁을 추구했던 지롱드당은 오른쪽이었다. 이를 근거로 진보적인 성향을 '좌파'라고 하고, 보수적인 성향을 '우파'라고 부른다. '좌익'과 '우익'이라는 말도 같은 뜻으로 병행 사용되고 있다. 진보주의자들은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사회 체제를 개혁하는 변화를 추구한다. 사회의 변혁은 제도 개혁을 통한 방법도 있고, 혁명 등 급진적인 방법을 통한 변혁도 있다. 그러나 규제를 통해 사회를 개조 시킬 수 있다는 독선(獨善)이 지나치면 외식적인 위선(僞善)으로 이어질 수 있고, 급기야는 공동체를 전제주의 체제로 끌고 간다. 그러한 이유때문에 ‘모든 악(惡)은 선에서 출발한다’는 서구의 속담이 만들어졌다. 보수주의자들은 기존 체제를 유지하되 잘못된 제도를 수정, 개선하면서 점진적인 사회 발전을 추구한다. 최소한의 규제와 최대한의 자유가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인다고 믿기 때문이다. 진보는 인간의 권리를 강조하지만, 보수는 권리보다는 인간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한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로 불려젔던 미국의 매케인 상원의원이 작년 여름에 별세했다. 당시 좁은 시골길을 따라 피닉스로 가는 매케인의 장례차량을, 생중계하던 CNN 화면에 비친 한 농부가 널빤지에 쓴 커다란 글씨 “ Thank You For Your Service”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매케인은 하노이 폭격 임무를 수행하던 중 비행기가 격추되면서 북베트남군에 포로로 붙잡혔다. 그가 미군 통합전투사령부 태평양사령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파악한 북베트남군은 매케인에게 석방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매케인은 “붙잡힌 포로들보다 먼저 석방될 수 없고, 자신이 선전용으로 이용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5년이 넘는 포로 생활 끝에 1973년 석방된 그는 고문후유증으로 평생 한쪽 다리를 절었다. 2008년 대선 유세 중 한 여성 지지자가 오바마의 인종을 문제 삼으며 '믿을 수 없는 아랍인'라고 소리치자, "아니다. 그는 품위 있는 가정의 미국 시민이다." 라는 말로 오바마를 옹호한 그는 진정한 보수주의자였다.

 

2013년의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삭발 사건'도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89세였던 부시가 삭발한 모습으로 대중 앞에 나타났다. 자신을 경호하던 경호원의 두 살짜리 아들 패트릭이 백혈병으로 투병중 머리카락을 잃자, 아버지의 동료들이 용기를 주기 위해 동조 삭발을 했는데, 부시가 여기에 동참한 것이다. 부시의 평소의 삶 또한 그러했다. 예컨대 성탄절이나 추수감사절 같은 명절에는 외부 활동을 하지 않고 집에서만 머물렀는데, 경호원들이 가족과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해서였다. 1942년, 최연소(18세)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넌 부시는, 일본 해역에서 일본군에게 격추되었다. 바다에 추락하여 표류하던 부시는 미 잠수함에 의해 기적적으로 구조되었다. 부시 대통령과 매케인 상원의원은 품격, 배려, 경청, 공직 봉사, 국가, 전통, 민주주의, 헌법 등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평생을 산 보수정당의 정치인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 가치들의 기저에는 '겸손'이 있다. "개인은 어리석지만 인류는 현명하다"고 한 에드먼드 버크의 주장처럼, 개인이 갖는 한계와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자세인 겸손이야말로 보수의 핵심 가치이다. 겸손한 사람은 권리보다는 책임과 의무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2월 12일 여성가족부는 각 방송사에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를 배포했다. 안내서의 부록인 ‘방송 프로그램의 다양한 외모 재현을 위한 가이드라인’에는 “비슷한 외모의 출연자가 과도한 비율로 출연하지 않도록 한다”는 규제 항목이 들어있다. 여가부는 외모 획일화의 사례로 음악방송에 출연하는 아이돌 그룹을 예로 들었다. '음악방송 출연 가수들은 모두 쌍둥이?'라는 소제목 아래에 “음악방송 출연자 대부분은 아이돌 그룹으로, 음악적 다양성뿐 아니라 외모 또한 다양하지 못하다”는 토를 달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은 마른 몸매, 하얀 피부, 비슷한 헤어스타일, 몸매가 드러나는 복장과 비슷한 메이크업을 하고 있다. 외모의 획일성은 남녀 모두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규제를 통해 문화를 개조하려는 여성가족부의 기상천외한 발상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그리고 평등과 평준을 주장하는 진보주의자들이 획일화를 싫어한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나왔다. 책임과 의무보다는 자기 의(義)를 드러내기 좋아하는 진보주의자들은 과정이나 규정 따위는 보이지 않나 보다. 방송내용의 공공성과 공정성 강화라는 목적으로 운영되는 사후 심의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여가부는 안내서 마지막에 “방송을 기획, 제작, 편성하는 모든 과정에서 방송사, 제작진, 출연자들이 꼭 한번 점검해 보고 준수해야 할 핵심사항”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국민 외모까지 간섭하는 국가주의 망령을 규탄한다. 최근 인터넷 사이트 접속 검열, 방송 장악 시도에 이어 이제는 외모 통제냐"고 질타한 야당 대변인의 성명이 오늘 따라 귀에 쏙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