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표작품 ]

정감록(鄭鑑錄)이 만들어 낸 발칙한 봉기꾼 - (제2회)-< 때여! 나의 때여! 동학의 세상이여! > -국보문학 6월 호 2022.06(통권 166호)

高 山 芝 2022. 6. 3. 15:58

< 때여! 나의 때여! 동학의 세상이여! >

 

2부 정감록(鄭鑑錄)이 만들어 낸 발칙한 봉기꾼 - (2)

 

(6)

 

얼굴과 가슴 등에 털이 많이 난 이필재(李弼濟)

수염은 용수(龍鬚)

등에는 일곱 개의 점()이 있었네

 

출신(出身) 신분의 이홍(=이필제)

우연히 만난 공주부호 심홍택(沈弘澤)

그의 문재와 언행 풍채(風采)에 매료되어

천금을 아끼지 않고 후원했네.

 

이홍(=이필제)은 심홍택(沈弘澤)의 재물로

동지들의 생활비를 대주면서

양주동(梁柱東), 박회진(朴會震) 등을 포섭했네.

 

보은 아전 출신 양주동(梁柱東)

스스로 천자天子가 된다며 말하고 다녔네.

 

이홍(=이필제)은 안경을 사주면서

양주동(梁柱東)에게 접근했네.

 

1866년 봄 남종삼(南鍾三)

프랑스 신부 9명이 처형되고

영국 상선을 타고 온

독일인 오페르트가 통상을 요구했네.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난리가 난다는 소문이 돌았네.

 

야밤에 공주로 양주동(梁柱東)을 찾은 이홍(李弘)

 

근래 소문이 무성하여

대국의 흑귀자(黑鬼子)가 온다는 말도 들리네.

서양세력이 타국인과 연합하여 조선을 침략하면

그대는 장차 이곳에서 살 것인가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갈 것인가

 

하며 거사를 종용했네.

 

충청감영의 체포령 소식에

이홍(李弘)은 몸을 날려 도망쳤네.

 

그의 가족은 풀려났지만

포교들은 그를 붙잡기 위해

이홍(李弘)의 집을 계속 감시했네.

 

(7)

 

충청도에서 전라도로 도피한 이홍(李弘)

동지들과 수시로 연락을 취했네

 

1868년 여산의 이성겸(李聖鎌)을 만났네.

 

이성겸(李聖鎌)을 따르는

전라도의 유생들이 많았네.

 

그들 중에는 검술과 무예에

능한 자들도 있었네.

 

이성겸(李聖鎌)이 이홍(李弘)에게

과거가 있으니 함께 상경하여

일을 도모하자고 권했네

 

이홍(李弘)은 시 한수로 자신의 뜻을 밝혔네

 

역사는 외로운 신하의 의를 저버리지 않고

해와 달이 함께 장사의 마음을 밝히네

(春秋不負孤臣義 日月同明壯士心)

 

진천을 중심으로 정소국(鄭素國)의 아들이

변란을 일으킨다는 소문이 돌았네.

 

이홍(李弘=필제)은 사람들을 설득했네.

 

부랑아 3백여 명으로 출발해

()나라를 건국한 주원장(朱元璋)을 보라

 

사람의 일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아국(我國)을 움직여 군사를 얻으면

중원(中原=중국)도 정벌할 수 있다

 

필제(弼濟)의 필() 자는 궁궁(弓弓)이며

을유생(乙酉生)인 필제(弼濟)의 사주(四柱)

을을(乙乙)을 뜻하니

임진솔솔지설(壬辰松松之說)의 이여송(李如松)

이필제(李弼濟) 뜻한다고 해석했네

 

* 주석 : 임진솔솔지설(壬辰松松之說) = 임진왜란 당시 피난지를 가르키며 명나라의 장수

이여송(李如松) 자에서 유래했다

 

정감록(鄭鑑錄)의 피병설(避兵說)

양이(洋夷)의 침공이라는 위기의식으로

동모자(同謀者)를 포섭했네.

 

변란이 있으면 창의(倡義)하는 것이 어떻겠느냐에서

‘1869년에 들어 민심이 크게 흔들리고 있으니

이때를 틈타 봉기해야 한다고 충동질 했네

 

(8)

 

진천작변(鎭川作變)

김병립(金炳立)의 발고로 세상에 알려졌네.

 

판교에 사는 김낙균의 당숙 김병립(金炳立)

공주에 사는 현경서는 내외종간이였네

 

김병립(金炳立)은 이사 갈 집을 사 달라고

현경서에게 돈을 주었으나

그는 집을 사 주지 않고 돈도 돌려주지 않았네

 

거세게 항의하는 김병립(金炳立)

너희들 형제가 이필제와 모의를 꾸미는 것을 내가 안다.

네가 만약 돈을 독촉하면 내가 고발할 것이라고 협박했네

 

겁을 먹은 김병립(金炳立)이 상경해

나의 형은 그 사실을 대략 알지만

깊이 관여한 바가 없으니 잘 살펴 달라

단서를 붙여 이필제(李弼濟) 일당을 고발했네

 

연고자 12명이 포도청에 잡혔으나

주모자 이필제(李弼濟)와 김낙균은 도망을 쳤네

 

심홍택과 양주동은 장살(杖殺) 당했고

이필제(李弼濟)의 부인은 청주 감옥에

아들과 첩은 공주 감옥에 갇혔네.

 

(9)

 

10여년의 노력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네.

 

주성조(朱性祚)로 이름을 바꾼 이필제(李弼濟)

선산을 거쳐서 거창 땅에 들어섰네 (18698)

 

그는 주막집에서

거창 웅양면의 선비 이덕경을 만났네.

 

이덕경은 무등곡에 사는

김영구를 만나려 가는 길이였네

 

방술(方術)과 비기(秘技)와 정감록(鄭鑑錄)

동원해 이덕경의 마음을 사로잡았네

 

이덕경은 함께 김영구를 만나자고 권했네

 

주성조(朱性祚)는 병을 핑계로

김영구의 사랑채에서 며칠을 보낸 후

 

머지않아 난리가 날 터이니

나를 따라 섬으로 들어가 피란하면 좋을 것경상감영계록경오년조

 

이라는 말을 남기고 김영구의 사랑채를 떠났네

 

임자년(1852)과 계축년(1853)

북경(北京)에 난리가 났다는 소문을 듣고

평양을 떠나 이곳에 정착한 양영열(楊永烈)

거창에서 훈장 노릇을 하고 있었네

 

김영구의 사랑채에서 양영열(楊永烈)

자신을 주성조(朱性祚)로 소개한 이필제(李弼濟)

 

양영렬(楊永烈)은 이필제의 첫인상을 이렇게 설명했네

 

작년 가을 주성조(朱性祚)를 우연히 만났는데 (1869)

그의 문사와 언어를 보니

반고나 사마천, 소진이나 장의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내가 깊이 사귀기를 원해 못할 말이 없었는데

성조는 비분강개의 담화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지금 민생이 도탄에 빠지고 시대의 걱정이 보통 일이 아니다

만약 영웅이 있다면 민생을 구할 수 있을 것인데

그대는 흔쾌히 따르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추안급국안》 〈진주죄인등국안)

 

시대의 영웅이 될 만한

인물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양영렬(楊永烈)

이필제(李弼濟)를 데리고 서당으로 와서

성하첨(成夏瞻)과 정만식(鄭晩植)을 소개했네

 

(10)

 

병인양요 때 한양에서

거창으로 피난 온 정만식(李弼濟)

고종 2년 무렵부터 변란(變亂)을 계획했네

 

나라의 황급함을 보고

장차 대사를 일으켜 만민을 구하기 위해

제주와 울릉도 등지에서 거사하려 했네.

 

병법과 술수(術數)에 능통한

성하첨(成夏瞻) 등의 거사 모의는 고산자비기(古山子秘記)

상주신도록비기(尙州新都錄秘記)에도 등장하네.

 

이필제(李弼濟)는 정만식(鄭晩植)과 성하첨(成夏瞻)에게

자기의 꿈은 중원에 있으니

조선을 동서남북 네 개의 제후국으로 나누어

함께 경영을 하자고 설득했네.

 

얼굴에 황기(黃氣)가 있고 손금에 왕() 자가 있는

정만식(鄭晩植)을 정진인(鄭眞人)으로 내세우고

거사에 필요한 병력은

문명(文名=격문)으로 사람을 모우면 된다고 했네

 

변란을 꿈꾸던 세 사람에게

이필제(李弼濟)는 부싯돌과 같았네

 

약장수 양성중과 장사꾼 정재영을 포섭했네.

 

정감록(鄭鑑錄)의 정진인(鄭眞人)

정만식(鄭晩植)이라며 민심을 충동했네.

 

동조세력을 규합한 이들은

지리산 밑 덕산으로 진출하여

거사하기 전에 자금의 염출의 방법에 대해 협의했네.

 

마산포에 어장을 경영하거나

논을 사서 농사를 지어 자금을 만들자고 했지만

이는 시일이 너무 오래 걸렸네

 

가짜어사를 출두시켜

자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 확정되자

성하첨(成夏瞻)이 밭을 팔아 170량을 마련했네.

 

이필제(李弼濟)는 거사의 명분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네.

 

지금의 시세는 양우(洋擾)가 자주 있고

북쪽이 소요하여 강을 건너올 우려가 있으며

왜구도 엿보는 조짐이 있고

해도에는 또한 도적이 많으니

나라의 형편이 산 너머 산이다.

만약 지금 한 곳에서 병사를 일으키면

사방에서 봉기하고 곳곳에 전기(戰氣)가 있어서

온 나라가 삼분사열되면 북우(北憂)를 막기 어렵고

군정(群鄭=여러 명의 鄭眞人)

함께 나타나는 것 역시 저지하기 어려우므로

나는 의병(義兵)을 일으켜 해도(海島)에 들어가

안정(安定)을 도모할 것인즉

집과 나라를 함께 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재영은 짐꾼의 능력에 따라

10냥 내지 30냥씩 준다는 소문으로

머슴과 일꾼 등 가난한 사람들을 모았네.

 

12월 초 양영렬(楊永烈)의 집에

이필제(李弼濟) 등 장정 19명이 모였네

 

일꾼들에게는 섬에 있는 어장을 사들인다고 속였네

 

이필제(李弼濟)는 각기 지닐 칼을 준비하고

비단을 사들여 수의(繡衣=암행어사의 옷)를 만들고

각 마을에 돌릴 격문을 작성하자

양영렬(楊永烈)이 이를 베껴 썼네

 

11일 정재영 등 예정된 인원이

율원촌(栗院村)에 모였네

 

이들은 산청 생림점(生林店)에 가서

하룻밤을 유숙하며

장터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들였네.

 

16일 하동을 30 리 남겨 둔 주점에서

17일에는 하동 섬진강 가에서 유숙한 후

화개장터에서 양영렬(楊永烈)

일꾼 어치원을 시켜서

소를 잡아 고사 지낸다는 명목으로

송아지 한 마리를 사오게 했네.

 

부족한 재원를 충당하기 위해

명화적(明火賊)으로 위장하여

부자의 재물을 탈취하려고 했으나

일꾼들이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네.

 

19일 곤양점(昆陽店)에 도착한 이필제(李弼濟)

주성조(朱性祚)에서 서성필(徐聖必)로 바꾼 후

가짜어사가 되어 남해현(南海縣)에 출두하여

()의 재물을 빼앗는다는 계획을 밝혔네.

 

놀란 일꾼들은 돌아가고 8 명만 남았네.

 

하동 두치나루에서 배를 타고

남해 죽도로 가려다가

배에 탔던 군교가 수상하게 대하자

배에서 내린 이필제(李弼濟) 일행은

가짜어사 계획을 포기했네.

 

이 때문에 이필제(李弼濟)

하동의 불한당’, ‘남해의 가짜어사 출두라는

죄목(罪目)이 붙게 되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