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주풀이 * 1 >
신(神)의 말 듣기 위해
신(神)의 기(氣) 알기 위해
솔가지 잡아맨 청죽(靑竹)
시누대를 세웠네
흔들리는 신줏대
성주신(城主神)이 거할
동자주를 세우고
대주신(垈主神)을 영접할
성주굿판 벌리네
성주신(城主神) 곡식(穀食)
해 마다 햇것으로 바꾸고
조왕신(竈王神) 정화수
새벽마다 새 것으로 바꾸네
묵은 것을 버리고
우(又) 일신(日新) 하기 위해
머리 숙어 손 비비며
가신(家神)에게 축원하네
성주(城主) 또는 성조신(成造神)이라 한다. “와가(瓦家)에 성주요, 초가(草家)에도 성주요, 가지막에도 성주”라는 말이 있다. 성주(城主) 또는 성조신(成造神)은 가신(家神) 중 하나로, 하나의 집에 하나의 성주(城主)만 있고 복수는 없다. 우리의 선조들은 가신(家神)인 성주(城主)와 대주(垈主)라 하는 남자가장(남자 없으면 여자)에 의해 가운(家運)이 기본적으로 영향 받는다고 믿었다. 성주신은 맞이하지 않으면 들어오지 않는 신이기 때문에 성주굿 등으로 맞이해야 한다. 성주신은 집안에 부정한 일이 있으면 떠나버린다. 오늘날에는 대체로 '성주단지'라 하여 대청마루 한 귀퉁이에 쌀을 담은 독을 모시거나, 종이를 접어서 대들보에 묶어 모신 '성주신체'를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가신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우두머리 격인 성주가 하늘에서 내려온 점이다. 이것은 유라시아 유목민족의 전형적 문화 요소인 이른바, 천손강림 신화와 일치한다. 겨레의 지도자가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설화이다. 단군신화 속의 환웅도 하늘의 자손이다. 『삼국유사』에는 옛적에 환인의 서자 환웅이라는 이가, 자주 천하를 다스릴 뜻을 두고 사람이 사는 세상을 탐내어 구하여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마루턱에 있는 신단수 밑으로 내려왔다고 전하고 있다. 성주가 솔가지를 잡아맨 대나무를 타고 내려오는 점도 흥미롭다. ‘태백산 마루턱의 신단수’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대나무를 ‘신이 내려온 대’라고 따로 부르며, 그 자체(신대)를 마을지킴이(동신)로 모시기도 한다(시누대, 신우대, 신이대, 청죽靑竹). 강원도와 경상북도에서 성주를 용마루를 받치는 동자기둥에 모시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것은 집안의 여러 기둥 가운데 가장 높은 데에 위치한다.
조왕신(竈王神)은 부엌을 관할하는 신이며, 그 기원은 불을 다루는 데서 유래했다. 부엌은 음식을 만드는 곳으로 불과 물을 동시에 사용하는 곳이며, 가족 건강의 근원지이기도 하다. 조왕신은 불을 모시는 신앙이지만 또한 물로 조왕신을 섬기는 풍습이 있다. 부엌 부뚜막에 조왕단을 만들고 정화수(淨化水)를 담은 종지를 놓아 조왕신을 모셨다. 조왕신을 여신으로 간주하여 '조왕각씨', '조왕할망'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이 신은 집안을 보호하는 수호신이며 섣달 그믐날 밤과 관련하여 윤리적 의미가 매우 강한 신이기도 하다. 대문신의 부인이 조왕신이며, 그 첩이 변소신이라 서로 투기하는 사이라서 멀리 떨어져있다. 이는 정(淨)과 부정(不淨)의 대립을 신격화한 설명이라 볼 수 있다.
중국이나 일본의 가신(家神)은 성주처럼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가 없다. 중국의 경우, 하늘과 관계된 가신은 조왕 하나뿐이고 그것도 한해 한번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보고하는 데 그치며 하늘의 신이 내려오지는 않는다. 일본에서는 산이나 들 또는 신사나 절간에서 모신다. 격으로 보면 우리나라 성주(城主)가 가장 높은 셈이다. ‘가신’은 집을 지키는 신답게 집안 곳곳에 깃들였다. 방, 마루, 마당, 우물, 장독대, 곳간, 뒤란, 뒷간 등 어디에나 있다. 이외에 문에는 문신이 파수를 서고, 지붕에서는 바래기 기와가 망을 본다. 제아무리 힘이 세고 꾀가 많은 악귀라 하더라도 집안으로 들어올 생각은 꿈에도 먹지 못할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집안에 들어온 악귀를 내쫓는 제례를 베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굳게 지켜 아예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도 하겠다. 가신(家神)의 신체는 곡식이 대부분이다. 성주를 비롯하여 조상, 터주, 삼신 등은 쌀을 신체로 삼는다. 업 가운데서도 쌀과 연관된 것이 있다. 우리 민족이 농업을 천하에 가장 중요한 생업으로 여겨왔으니 당연한 일이다. 신체인 곡식은 해마다 햇것으로 바꾼다. 이는 새 힘과 새 생명의 탄생을 상징한다. 묵은 것을 버림으로써 새 활력을 얻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우주의 순환원리와도 같다. 조왕(竈王)의 신체는 물이다. 물이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새벽마다 갈아 붓는 것도 역시 우주의 순환원리를 재현하는 것이라 하겠다. 우리나라 가신들은 대체로 사람의 머리 위에 자리 잡아 사람들이 머리를 숙여 손을 비비며 축원을 올리기 알맞은 높이에 있다. 또 가신(家神)은 집 밖으로 나가면 집안이 망하는 것으로 여겨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제 구실을 다하도록 모셨다. 이처럼 가신들은 집에서 인간과 함께 공존하며 집을 지켜주는 인간에게 친근하고 가까운 신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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