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군 진산면 부암리는 금산에서 진산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부수바위라고도 하는데 이 부수바위에는 임진왜란 때의 이야기가 전하여 오고 있다.
한순은 임진왜란 때 금산에서 조헌 장군과 함께 순절한 의병이다. 한순과 의병들은 의병장 고경명과 함께 호남지방으로 진군하려는 왜적을 막기 위하여 전라도 여산에서 연산을 거쳐 진산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며칠 전부터 계속 걸었기 때문에 모두들 지쳐 있었다. 더러는 길을 걷다가 너무 지쳐서 쓰러지기도 했지만 한 사람이라도 빨리 가서 왜적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강행군을 했기 때문에 더욱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진산성에 들어서자 의병들은 모두 주저앉았다. 누구 하나 기운 있는 병사가 없었다. 이럴 때 왜군이 쳐들어오면 패하기 꼭 알맞았다.
"군사들을 이끌고 빨리 배팃재로 갑시다." 의병들이 진산성에서 왜적을 맞아 싸우는 것보다는 협착한 산골짜기로 적을 유인해서 싸우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아는 대장 고경명의 의견이었다.
"그러나 병사들이 모두 이처럼 지쳐서야 어떻게 갈 수 있습니까?" 유팽로와 한순의 의견이었다. 결국 의병들은 진산성에서 하루 쉬고 내일 일찍 배팃재로 가서 적을 막기로 했다.
의병들은 아픈 다리를 쓰다듬으며 밤을 맞이했다. 마침 보름달이 동산 위에 둥실 떠올랐다. 병사들은 유난히 밝은 달을 보며 술을 마시기도 하고 잡담을 하기도 했다. 긴 행군에서 오랜만에 취해보는 휴식이라 한때나마 모두들 즐거운 표정이었다.
대장 고경명도 불콰한 얼굴로 어쩌면 내일쯤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며 달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한순은 들고 있던 술잔을 내던지고 아들 석필을 불렀다.
"석필아, 우리 부자는 나라에 목숨을 바친 몸이니 내일 죽으나 모레 죽으나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죽을 때 의롭게 죽어야 하느니라."
"아버님,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러다가 왜놈들이 쳐들어오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 나도 그걸 염려해서 너를 찾은 것이다. 내가 군마를 줄테니 병사 두 명과 함께 뜬 바위에 가서 잠복하고 있다가 혹시 적이 야습을 해오면 목숨을 걸고 거기서 저지하여라. 너도 알다시피 지금 이런 상태로 적이 들이닥치면 우리 병사는 모두 전멸하고 만다."
한순은 비장하게 말했다. 한석필도 마음속으로 굳은 결의를 하고, 병사 두 명과 함께 부수바위로 갔다.
부수바위를 협착한 골짜기 사이로 금산에서 들어오는 좁다란 길목이다. 그러니까 길 양쪽에는 가파른 돌산이 길에 바짝 다가서 있었다.
한 석필은 병사 두 명과 함께 이 골목에서 길을 지키기로 했다. 한편 왜적들은 하루 빨리 호남지방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밤중인데도 행군을 계속하고 있었다. 훤한 달밤 길목을 지키고 있던 세 사람은 이쪽으로 오는 적을 향하여 바위 돌을 굴리기 시작했다. 너무 좁은 골짜기라 왜적들이 도저히 이 길을 지나갈 수가 없었다. 그들은 쉬지 않고 계속 돌을 굴렸다.
산 밑에는 수많은 왜적들이 돌에 맞아 쓰러졌다.
날이 밝아올 때까지 그들 세 사람은 기진맥진한 채 계속 돌을 굴리고 활을 쏘아댔다. 날이 밝자 왜적들은 산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너무도 많은 수의 왜적이라 이 세 사람은 그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이 세 젊은 의병은 부수바위 위에서 구국의 한을 품은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튿날 진산에 있던 주력부대 의병들은 배팃재로 몰려가서 왜적을 맞았다. 왜적들은 지난 밤 부수바위 싸움에서 겨우 의병 세 사람의 위장공세를 대부대인줄만 알고 밤 새워 싸운 끝에 너무나 지쳐 있었던 터이라 기력을 잃고 싸울 용기조차 내지 못해 벌벌 기고 있었다.
이때 우리 의병들은 용기를 얻어 대부대의 왜적을 통쾌하게 무찔렀으니 이것이야말로 소중한 아들을 희생 시켜가면서 전공을 세운 한순의 위대한 전략 때문이었다.
(1995. 금산군 진산면 교촌리 342. 한 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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