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자들의 심금을 울린 ‘마상격문’
“근자에 국운이 불길하여 섬 오랑캐가 불시에 침입하였다. 처음에는 우리나라와 약속한 맹세를 저버리더니 나중에는 통째로 집어삼킬 야망을 품었다. 우리의 국방이 튼튼치 못한 틈을 타서 기어들어 하늘도 무서워하지 않고 거침없이 북상하고 있다.…… 고경명은 비록 늙은 선비지만 나라에 바치려는 일편단심만은 그대로 남아 있어 밤중에 닭의 소리를 듣고는 번민을 이기지 못하여 중류에 뜬 배의 노를 치면서 스스로 의로운 절개를 지키려 한다. 한갓 나라를 위하려는 성의만 품었을 뿐, 자기 힘이 너무나 보잘 것 없음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이제 의병을 규합하여 곧장 서울로 진군하려 한다.…… 아, 각 고을 수령들과 각 지방의 인사들이여! 어찌 나라를 잊어버리랴? 마땅히 목숨을 저버릴 것이다. 혹은 무기를 제공하고 혹은 군량으로 도와주며 혹은 말을 달려 선봉에 나서고 흑은 쟁기를 버리고 논밭에서 떨쳐 일어서라! 힘닿는 대로 모두 다 정의를 위하여 나선다면 우리나라를 위험 속에서 구해 낼 것인바 나는 그대들과 함께 있는 힘을 다할 것이다.”
1592년 6월 북상하던 고경명 의병은 전주에 이르러 관군이 임진강에서 참패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6월 24일 각도의 수령과 백성, 군인들에게 격문을 보낸다. 이것이 말 위에서 쓴 그 유명한 마상격문(馬上檄文)이다. 이 격문은 당시 식자층을 감동시켰고, 호남의 열혈남아들을 고경명 휘하로 결집시켰다. 식자들의 심금을 울린 이 격문을 후대의 사람들은 최치원의 ‘황소격문(黃巢檄文)’이나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에 비견되는 명문으로 평가 했다.
1592년 5월 29일, 고경명을 비롯한 안영 ․ 유팽로 ․ 양대박 등 21개 지역의 유생들이 군사를 이끌고 담양의 추성관(현 담양동초등학교 정문)에 모인다. 이 모임에 서 고경명은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그는 단 위에 올라 늙고 병들었음에도 대장이 되는 것을 사양하지 않았다. 당시 그의 나이 60세였다.
고경명이 의병장에 추대되자 전라도 각지에서 6천여 의병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고경명 의병은 임금을 구하기 위해 북상 중 호남에 침입한 왜적을 먼저 몰아내기 위해 금산의 왜군을 공격했다. 그러나 관군이 무너지면서 고경명군도 무너지고 말았다. 거병한지 한 달 여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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