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

[스크랩] [한국 명문장] 고경명 마상격문

高 山 芝 2011. 7. 26. 15:05


전라도 의병장 고경명은 삼가 각도의 군인과 백성들에게 고하노라.

오늘의 나라 운수가 비색하여 섬 오랑캐가 쳐들어 왔다. 우리가 방심한 틈을 타서 왜적이 헛점을 찌르고 기고만장하게 굴며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구나! 미친듯이 날뛰고 우리 나라를 마구 유린하면서 북상하여 마침내 서울에 육박했도다! 우리의 장수들은 우왕좌왕하고, 수령들은 숲속으로 깊숙이 도망치는구나.

저 왜적에게 임금과 내 가족의 목숨을 내주는 것이 어찌 우리가 할 짓이냐? 지극히 존귀하신 임금으로 하여금 사직을 근심하시게 하면 네 마음이 편안하냐? 수 백년 조국의 품에서 살아온 수많은 백성들 중에 의롭고 용기 있는 남아가 어떻게 한 사람도 없단 말이냐? 조선에 대장부 없다는 비웃음을 사게 되니 실로 통탄할 일이요, 너무 불행한 일이 아니냐. 어찌하다 나라 형편이 이 지경에 이르렀느냐. 북상한 어가는 돌아오지 못하고 상주의 군사는 이미 무너졌다. 왜적에게 함락될 운명에 있는 서울 장안의 백성들은 불붙은 초막에서 날개 짓을 하는 제비와 같은 형상이다.

그렇지만 왜적이 일으키는 자욱한 먼지로 임금의 얼굴에 찾아 든 깊은 근심을 덜어드리고 적을 숙청하는 일은 정녕 그대들에게 기대할 일이 아닌가?

경명은 백발의 늙은이다. 밤중에 놀란 닭울음 소리를 듣고 견딜 수 없어 마지막 남은 조국애의 한 조각 붉은 마음을 갖고 일어섰노라! 강물에 뜬 뱃전을 두들기며 스스로 죽음의 길을 나서기로 하였다. 이는 오직 견마(犬馬)가 주인을 위하는 정성일 뿐이요, 모기가 태산을 짊어진 격이라 내 힘을 요량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의병을 규합하여 곧장 서울로 치닫기로 하고서 옷 소매를 떨치며 단상에 올라 눈물을 뿌리고 군중과 맹세하였도다. 이제 범을 넘어뜨릴 장사들이 모여 천둥 울리듯 바람 치듯이 수레에 뛰어 오르고 관문을 넘어가는 무리가 구름 모여 비 쏟아지듯 하는구나!

이는 누가 강요해서 응한 것도 아니요, 억지로 따른 것은 더욱 아니다. 오직 충의(忠義)의 마음이 생겨 다 같이 지성에서 울어난 것이다. 나라가 존망(存亡)의 갈림길에 처하였으니 감히 하찮은 몸둥이를 아끼지 않았을 뿐이다. 당초부터 의병으로 전쟁터에 나서 마음이 바르고 씩씩한 법이니 강약을 따질 것도 없다. 그래서 크나 작으나 상의하지 않고 의견이 같으며 머나 가까우나 소문 듣고 일제히 분발하는 것이다.

아! 우리 열읍 수령, 각처 인사들아! 충성스런 그대들이여 어찌 내 나라 내 겨례를 잊으리오, 의리는 의당 나라 위해 죽는 것이니, 혹은 무기를 구하고, 군량을 모으며, 말에 올라 남 먼저 전장으로 달리고, 분연히 쟁기를 던지고 밭 두렁에서 일어나 제 힘이 미치는 데까지 오직 의(義)로 돌아가라. 능히 임금을 위해 난(亂)을 막는 자 있다면 그와 더불어 함께 행동하기를 원한다.

우리 임금이 묵고 계시는 별궁은 멀리 서도에 있거니와 그 곳에 풍속이 아름다왔으며 병마(兵馬)가 강하여 일찌기 수.당(隋唐)의 백만 대군을 무찔렀다. 조정에서는 장차 계산이 있다. 임금이 어찌 한 구석에 주저 앉아계시겠느냐!

밀리는 듯하여도 끈질기게 싸우면 망하지 않는 법이며 복과 덕은 심한 근심 끝에 얻어지는 것이다. 보라! 호걸들이 국운을 바로 잡을 터이니 공연히 눈물 지을 까닭없고, 부로들이 임금을 기다리매 서울로 돌아오시는 날을 기약하리라. 의당 기운을 내서 남 먼저 나서기를 바란다.


전라도 의병장 절충장군 행 부호군 고경명은 삼가 전라도 도순찰사 절하에게 고합니다.

섬 오랑캐가 작란을 하여 임금께서 북쪽으로 파천을 하셨으니 조야는 오직 호남을 믿고 있습니다. 절하의 심중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겠지만 '난에 급히 대처하라'는 어명을 받고도 돌연히 근왕의 군사를 해산했으니 절하의 행동은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조정의 호령은 비록 단절되어 있지만 한 도내 사람의 말도 역시 두려운 것입니다.

근자에 용인에서 무너진 일도 실은 선봉의 패배로 말미암은 것이니 절하가 주장이 된 이상 그 책임을 모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절하는 오늘날에 있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진실로 그간의 잘못을 수습하여 임금의 근심을 위로하며, 기왕의 허물일랑 지나간 일로 돌리고, 단호한 결의로 배가(倍加)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구국평정의 공적을 쌓을 뿐만 아니라 절하에게도 전화위복의 날이 될 것입니다.

본도 의병이 처음 북로로 향하여 왜적을 깨끗이 소탕하고, 어가를 모실 결심이었는데 길에서 들은 즉 윤 상국이 서북의 정병을 거느리고 양경의 적을 토벌하여, 북방의 일은 거의 염려가 없게 되었다 합니다. 그러나 호서의 적이 금산에 들어 왔는데도 방어사의 군사가 아직 용계에 주둔하고 있으며 한 사람도 군중 앞에 맹세하고 앞장 서 나가는 자가 없다고 합니다.

절하가 이 시기에 진실로 군사를 널리 모집하여 크게 형세를 떨치지 못하면 우리 호남지방의 애처로운 백성들이 장차 모두 적의 칼날에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절하가 위로 국가를 회복하지 못하고 아래로 한 지방도 지키지 못하다가 어느날 아군이 적을 다 무찌르고 임금께서 환궁하시게 되면 호남 사람만 천지 간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될뿐 아니라 절하 역시 어떻게 과거의 허물을 씻을 수 있으리까?

절하가 혹시 '왜적이 너무 악독하여 맞붙어 싸우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면 군사를 나누어 험한 곳을 사수하며 그 요충을 막고 때로 기병을 내어 그 예기를 꺾는다면 적의 습성이 본시 경솔하고 조급해서 오래 견디지 못하리니 열흘이 못가서 큰 공을 이룰수 있을 것입니다. 다 같은 왕의 신하이요, 모두 나라 일이라 피차가 간격없이 서로 의지하는 처지니 각자의 의견을 자세히 듣고서 계획을 잘하여 후회가 없도록 하기 바랍니다.

출처 : 잡다한 글모음
글쓴이 : 잡다한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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