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 명(借名)의 세월 - 3 ]

[ 회 복(回復) ] - 1996년 7월 17일 -

高 山 芝 2014. 6. 12. 14:19

낮 최고기온이 섭씨 35도라는 소식에 전철 피서를 떠났다.

오메와 하이지마를 거처서 팔고선(八高線)으로 갈아 타 고마가와(高麗川)역에서 내렸다.

역에서 고마신자(高麗神社)까지는 약 30분정도 걸렸다.

고마신사(高麗神社) - 고대 일본에서 '고구려'를 '고려'로 표기, '고마'로 읽었다

고마신사가 자리잡은, 지금의 사이타마현 히타카시는 서기 716년 고구려계 도래인들이

세운 고마군이 설치된 곳이다.  고마신사(高麗神社)의 신(神)은 고구려로부터 망명해 온

고구려왕자(高句麗王子) 若光(잔코우)이다. 고구려가 당과 신라의 연합군의 공격으로

668년에 멸망 했을 때, 이 전란을 피해 고구려의 귀족(若光)이나 승려등이 다수 일본에 건너 와

주로 동일본에 살았지만 716년, 그 중의 1799명이 망명하자 武藏國(무사시노쿠니. 지금의 埼玉県; 사이타마현 근처)로 이주시키고 高麗郷(지금의 日高市; 히다카시 근처)을 설치하었다.

잔코우(若光)가 선정을 베풀자 나라시대에 성천원(聖天院) 승락사(勝樂寺)를 창건하였다.

고마신사라 불리는 이절은 특히 관운에 대단한 영험이 있어서 이곳을 방문하여 기도를 한후

총리대신이 된 사람이 많다고 전해진다. 고마군(高麗郡)은 메이지(明治) 29년까지 존속되었다.

고마신사에는 거대한 우리의 장승(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 두개가 서 있고 조선의 마지막 왕인

이은전하와 방자여사의 기념식수와 고려왕조의 왕묘 옆에 무궁화가 특히 나를 반갑게 맞았다. 

1300년의 역사를 가진 고마지신사, 신관은 高麗王 若光의 자손이 대대로 맡아 왔다. 

 

돌아오는 길, 전철 앞 좌석에 남여 중학생이 앉았다.

남학생의 성기를 만지작거리는 여학생,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듯하다.

손을 밀치며 자기 물건을 정리하는 남학생, 

부끄러움을 상실한 이들의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민을 해보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