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내게는 삶에 지쳐 무뎌진
칼날 한 자루 있었네

젊은 날의 화려함도
영감(靈感)도 사라진
녹슨 칼날 한 자루였네

세상의 모든 꿈 깨어지고
친구 또한 떠나간 어느 날이었네

이름 모를 돌 하나
내게로 다가왔네

내 영혼(靈魂)의 칼날을 휘어잡은 돌 하나

당신은 숫돌이 되어
나의 칼날을 갈고 있네

숫돌에 갈리어서 떨어지는
영혼(靈魂)의 녹 부스러기

나는 신열(身熱)로 온 몸을 떨었네

새벽닭이 울고 있네

어둠을 잘라내는 칼날은
역동(逆動)하는 힘이 되어
내 영혼(靈魂)의 골수(骨髓)를 쪼개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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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게 살며시 / 모든 것에서 자신을 떼어내는 / 어둠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 정령 현명하다고 할 수 없다.’ -헤르만 헤세의 ‘안개 속에서’ 중

‘느끼지 못하는 병(病)’이 죄(罪)임을 깨닫게 된 것은 막노동 현장에서였습니다. 지하 4m에서 하수도관을 매설하기 위해 터널을 뚫던 인간 포클레인의 삽질은 차라리 분노(憤怒)였습니다.
영혼(靈魂)의 노폐물이 땀으로 분출(噴出)되고 나서야 사내는 관계(關係)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관계가 단절(斷絶)된 것은 끊어짐이 아니고 마비(痲痺)됐기 때문이었습니다.
감각이 없이 죽어가는 병을 한센병 또는 문둥병이라고 합니다. ‘탓’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가족·친척과의 관계 또한 단절 시키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사내의 영혼이 문둥병을 앓고 있었던 것입니다. ‘관계의 단절은 죄 때문’이라는 말씀이 가슴을 때리자 사내는 미움과 증오를 내려놓게 됩니다.

 

앞만 바라보고 달려왔던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회한의 눈물을 흘리던 사내는 그동안 믿지 못했던 형제·자매, 이웃들이 믿어지기 시작합니다. 믿어지는 은혜, 믿어지게 하는 은혜를 사내는 비로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배울 학(學)자와 볼 견(見)자가 합쳐져 만들어진 깨달을 각(覺)자를 체험이나 지식의 학습이 눈에 보임으로 확실해지는 느낌이라고 사전은 정의하고 있습니다. 배울 학(學)자가 스스로 학습하는 것이라면 마음의 눈을 뜨게 하신 이, 학습에 담긴 진리를 깨닫게 하신 이는 성령(聖靈) 하나님이십니다. ‘탓’이라고 생각됐던 자신의 삶이 ‘합력하여 선(善)을 이루게 하는 절대자의 뜻’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사내는 자신의 녹슨 영혼의 칼날을 갈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