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표작품 ]

한국을 빛낸 문인 - 2017 명작선

高 山 芝 2018. 3. 26. 21:10

2017 명작가선 원고

 

< 사랑의 물 들여놓고 >

                      

하는 사랑

언제나 무성(茂盛)타 해도

사랑하다 사랑하다 멈추게 되면

푸른 잎 그대로 떨어집니다

 

찬 이슬 무서리를 견디어 내고

비바람 땡볕을 감내하면서

정갈한 이파리에 햇볕이 배어들면

천자만홍(千紫萬紅) 빛깔로 물이 듭니다

 

사랑 때문에 만나서

우리 서로 사랑을 한다지만

내 마음에 당신이 물들지 않으면

한 여름 단명(短命)한 햇빛일 뿐입니다

 

고통과 시련을 함께 하면서

거친 손, 잔주름에 밴 미운 정 고운 정

서른여섯 해 우러난 새하얀 뭉게구름

찰진 가을볕에 피어납니다

 

지나온 모진 세월 주마등 같지만

당신은 내 마음에 사랑의 물 들여놓고

천자만홍 빛깔로 사랑의 물 들여놓고

내설악 단풍으로 타오릅니다

 

   

<곰솔의 탄식>

                

껍데기는 가라구요

 

때가 되면

자연스레 헤어질텐데

 

야박하게

그리 말하지 말아요

 

내 연한 속살

 

염천(炎天)의 무더위와

엄동(嚴冬)의 설한풍에

 

거북등처럼 투박하게 갈라졌지요

 

만경평야 뒤덮던 깃발이

선홍빛 동백으로 피어나고

 

금남로를 가득 메운 아우성

내 의식 속에 아직 살아있는데

 

껍데기는 가라구요

 

살아남는 자

부끄러움에 껍질을 벗겨내면

 

아문 상처 덧이 나 피 흘리는데

껍데기는 가라구요

 

세월이 가면 껍데기 떨어지고

그대 껍데기 되어 바람막이 될텐데

 

아버지의 거친 손

생각이 다르다고

 

껍데기는 가라구요

껍데기는 가라구요

           

< 허 물 >

          

허물때문에 괴로워 말게나

 

허물은 벗는 것

 

벗겨지는 것

 

벗고나면 그 자리에 새 살이 돋는데

 

허물도 벗지않고 자책하지 말게나

 

아직도 할 일 많은 세상이라네

 

아직은 아름다운 세상이라네

 

허물을 벗지않고 자책함이 허물이니

 

허물때문에

 

허물때문에 괴로워 말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