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쉬들러 리스트 >
이념이 신념이 된
완장 찬 텔레반들
생명 보다
이념이 귀하다지만
천하를 얻고도
생명을 잃는다면
그들에게 천하는
무슨 유익 있을까
생각이 다르다
공격을 하다 보면
불로써 불을 끄니
재앙을 자초하고
물로써 물을 막으려다
더 큰 화를 부르네
스스로 마음을 비워
생각을 재계(齋戒)하면
하늘 음성이 들리고
생명의 도를 알게 되네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기에
생명을 구하네
세상을 구하네
랍비가 기도를 하는데 테이블 위에 놓인 촛대의 촛불이 꺼지면서 유대인의 험난한 앞날을 예고하면서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시작 된다. 나치 당원인 체코 태생의 독일인 사업가 쉰들러(리엄 니슨)는 전쟁의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뇌물로 SS(나치 친위대) 대원들과 친분을 쌓고 한편으로는, 유대인 회계사 슈텐(벤 킹슬리)를 통해 유대인의 자본을 유치하여 군납용 식기 회사를 불하받았다. 그의 회사는 값싼 유대인을 노동자로 고용함으로 승승장구 한다. 그러나 새로 부임해온 광기어린 독일군 장교 괴트(랄프 파인스)의 유대인에 대한 분노와 살인이 지속된다.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는 유대인들의 두려움과 공포는 날이 갈수록 점증된다.
나치의 유대인 말살 정책으로 벌레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고 유대인이 학살을 당하는 장면들을 목격한 후부터 쉰들러는 마음이 복잡해지고 흔들리며 양심의 가책을 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그동안 유대인을 죽음의 수용소에서 구하려고 유태인 1100여 명의 리스트를 작성하여, SS(나치 친위대) 장교 괴트와 뇌물을 주고 거래한다. 유태인들은 남자와 여자, 두 그룹으로 나뉘어 기차를 타고 쉰들러의 고향 체코슬로바키아 브린디츠로 향했다. 남자들은 무사히 도착한 반면, 서류에 착오가 생겨 여자들을 태운 기차는 아우슈비츠에 도착했다. 뒤늦게 착오를 발견한 쉰들러는 다시 독일군을 돈으로 매수해 아우슈비츠에 있던 유대인 여자들을 구해냈다. 그로부터 약 7개월 동안 쉰들러의 공장은 어떤 제품도 만들어내지 못했고, 쉰들러는 전 재산을 털어 구해낸 유태인들을 먹여 살렸다.
1945년, 독일은 무조건 항복을 했다. 나치 당원이자 군수품제조업자인 쉰들러에게도 수배령이 떨어졌다. 공장에서 목숨을 건진 유대인 노동자들이 모여 쉰들러를 환송했다. 그들은 감사의 표시로 자신들의 금이빨을 뽑아 만든 금반지에 탈무드의 한 구절을 새겨서 선물했다. “한 생명을 구하면 전 세계를 구하는 것이다.(Whoever Saves One Life, Saves The World Entire)”. 반지를 받은 쉰들러는 감정을 가누지 못한 채 흐느꼈다. “더 구할 수 있었는데... 더 살릴 수 있었는데... 조금 더... 조금이라도 더 살릴 수 있었는데...” 그 때 회계사 슈텐은 “오스카씨, 당신 때문에 살아 있는 사람이 1,100명이나 됩니다. 보십시오.” 그러나 쉰들러는 머리를 들지 못하면서 뇌까렸다. “돈을 더 들였더라면...너무 많은 돈을 나는 허비했다. 이 차, 수용소 소장은 이 차를 샀을 것인데, 어쩌자고 이 차를 붙들고 있었을까? 이 차로 열 명은 더 살릴 수 있었는데. 최소한 한 명, 한 명은 더 구했을 텐데 .....”
쉰들러 리스트를 관람하고 나서, 나라면 오스카 쉰들러를 나치 전범으로 처벌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해방이 된지 7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친일파 청산이 되지 않고 있다며 죽창가를 부르고 있는 텔레반들이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존재한다. 그들이 보기에는 오스카 쉰들러는 전범으로 정죄를 받아야 할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그들에게는 사실의 뒷면에 있는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흑묘백묘(黑猫白描) 이론으로 오늘의 중국을 만든 덩샤오핑은 마오쩌뚱에 대해 “공(功)이 일곱이고 과(過)는 셋인데 공이 과보다 크니 최고 지도자로 받들어야 한다”며 공칠과삼(功七過三)의 이론을 주장했다. 유교가 지배이념이었던 조선 사회는 사림(士林)의 텔레반들이 당쟁의 투사로 등장했다. 옳고 그름 보다는 연좌제라는 도구로 삼족을 멸했기 때문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만 했다. 시간이 지나자 훼절(毁節)은 죄악이라는 선비들의 사고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DNA로 변질 되었다. 기독교 사회에서는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면 더 크게 쓰임을 받지만, 유교 사회에서는 선비의 훼절은 죽는 날까지 주홍글씨로 따라다녔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들은 잘못인줄 알면서도 인정할 수 없었다. 다름을 틀림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사회, 사촌이 논을 사도 배가 아픈 사회, 우리 사회는 지금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사실 확인은 하지 않고 ‘카더라’의 유언비어만 양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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