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때여 나의 때여
(22) - [경상감사 서헌순(徐憲淳)의 심문-하]
신선神仙의 약藥은
궁穹자의 반자半字 뜻을 취하여
종이에 그린 것으로
두 궁弓로 된 지방紙榜을 풀이하기를
그 이름은 태극太極이요
다른 이름은 궁궁弓弓이니
강령주문降靈呪文 여덟 글자를 암송하면
몸이 떨린다는 들은 바 모두를 진술했네.
한울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는 최복술이
금년 2월과 5월 사이에
서양 사람들이 용만에서 나오면
나의 통문을 기다렸다가
일제히 뒤따라 나서라 했다는 조상빈은
검무를 익혀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공훈을 세우게 되면
나는 고관高官이 되고
너희는 다음 자리를 맡게 되리라고 진술했네
천제天祭를 지낼 때
강령주문降靈呪文을 암송하고
칼을 휘둘렀다는 최복술
명필인 그가 병이 속히 낫도록 빌면
여귀厲鬼는 달아나고
학신이 도망했다고 말한 이정화는
선약仙藥이란 두 활 궁弓 자를 종이에 써서
혹은 불살라 마시고
혹은 씹어서 삼키는 것이라고 진술했네.
궁궁弓弓에 대해 풀이하기를
임진년과 임신년에는
이재송송이재가가利在松松利在家家라 말했으나
갑자년에는 이재궁궁利在弓弓이므로
궁弓 자를 써서 불에 태워 마시면
제압할 수 있다고 진술했네
최복술을 세 번째로 문초에서
서양인이 나오면
사특邪慝한 마귀의 가르침에
속임을 당할 것이니 갑자년에는
궁궁이재弓弓利在해야 한다고 진술했네
귀마[鬼魔=한울님]가 말하기를
계해년 12월 19일에 서양인이 나오므로
갑자년 정월이면 소문이 있을 것이라
계해년 10월에는 너는 하양현감이 될 것이며
12월에는 이조판서가 될 것이라 했네.
칼춤은 마魔가 시킨 것이요
필법筆法은 접신接神 후에 더욱 뛰어나
원하는 사람에게 써 주었으며
하루에 수백 리 씩 간다는 말이 있으나
걸음이 더디고 수십 리만 가도
발이 부르튼다고 진술했네
교자를 타고 다닌다는 설은
작년에 신령, 영천을 내왕한 일 때문이며
일월산에서 소동이 났다는 설은
양양, 진보 사람이
산 밑에 막을 치고 모여
천제天際를 드린 것이라고 주장했네.
이내겸은 세 번째 문초에서
최복술이 입산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고 진술했네
동몽 성일규도 칼춤을 시험 삼아 배울 때는
몸이 떨리는 듯했으나
공중으로 떠오르는 조짐은 없었다고 진술했네.
최복술을 네 번째 심문에서
규 자를 도역이라 해석하고
서학西學이 도경의 종류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여
그 이익 됨이 규 자에 있으니
그것을 취해 궁弓자 밑에 점이 둘이 있으므로
궁궁弓弓이 된다고 주장했네.
계해년 12월 19일을 기한으로 하여
소식이 없으면 배우는 무리들이
이탈할까 두려워서
갑자년 10월 11일로 기한을 변경하고
10월이 지나면
전량錢糧과 갑병甲兵 등을 준비하여
서양 도둑이 나오면
주문呪文과 검무劍舞를 가지고
천신天神의 도움으로 적장을 잡을 것이라고 진술했네
서양 도둑은 화공火攻이 특기니
갑병甲兵으로 대적할 것이 아니라
오직 동학東學이라야 그들을 진멸盡滅할 것이라는
최복술의 말을 강원보가 진술했네
최한[崔汗=최복술]이 나무칼은 쇠칼보다 이로우니
양인洋人의 눈을 현혹시키면 보검으로 알 것이니
단단한 갑옷과 날카로운 병기兵器로도
우리에게 근접하지 못할 것이라고 이정화가 진술했네
최복술의 수제자는
최자원, 강원보, 백원수, 최신오, 최경오 등이네
백원수의 머슴인 김인찬은
동학의 주문을 외우다 광기가 발하여
어린 아들 용성에게 강령집필降靈集筆케 하더니
대서代書하기를 인찬은 대장大將이 되고
용성은 중장中將이 되고,
강원보는 순도順導가 된다고 하자 머슴을 쫓아냈네
모두를 대질하여 문초를 받아
요악妖惡한 무리를 철저히 들춰내어
교지敎旨가 있기를 아래와 같이 품禀하고
동조東朝의 처분을 기다렸네
“최복술은 본시 요망한 종류로 감히 속임수를 품고
주문을 지어 위천주爲天主의 요언지설妖言之說을 퍼뜨려
서양을 배척한다면서 사학邪學을 답습
포덕의 글을 꾸며 음으로 불순한 생각을 꾀하였다.
궁약弓藥을 비방秘方이라 하였으며
칼춤과 검가劍歌를 퍼뜨려
흉악한 노래로 태평한 세상에 난리를 걱정토록 하여
남몰래 무리를 지었다. 귀신天神이 가르침을 내렸다 하니
그 술책은 하내풍각河內風角이요
모두가 그에게 돈과 양곡을 바치니
후한後漢의 미적米賊이요
엄한 법[三尺莫嚴]이 통通치 않으니
조금이라도 허용하기 어렵다.
강원보 등도 함께 죄를 범하였으니
용서할 수 없는 죄목이다.
정석교 등도 역시 중하게 처분해야 할 것이고,
전석문 등도 아울러
진장眞贓이 없는가를 합당하게 참작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거괴巨魁를 체포하여
수굴과 뿌리를 완전히 드러내어
차례대로 열거하여 등문登聞하오니
처분이 내리기를 공손히 기다리겠다.
장경서 등은 꾸짖어
깨우치도록 엄히 훈계하여야 한다.”
(23) – [순도殉道]
수운水雲의 죄목罪目은
경국대전經國大典에도 없었네
대명률 제사편大明律祭祀編의
금지사무사술조禁止師巫邪術條에 의한
‘일응 좌파의 도로 정도를 어지럽힌 사술一應左道亂政之術’
을 적용하고자 경상감사 서헌순徐憲淳은
"칼춤을 추며 흉한 노래를 불러 퍼뜨리고
태평스런 세상에 난리를 꾸미려 하고
은밀하게 당黨을 모은다“고 판결하고
국정을 모반하여 반란을 획책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로 검결을 지목했네.
수운水雲은 좌도난정左道亂正의 죄목으로
참형하라는 처결이 내려졌으나
박씨 부인과 큰아들 최세정은 무죄방면되었네
1864년 3월 10일[양력4월15일] 14시경
아미산蛾眉山 노들벌 관덕당[觀德堂=동아백화점 뒤쪽] 뜰
망나니가 칼을 내리쳤으나
목에 흔적이 나지 않았네
모두들 놀라 어찌 할 줄 몰라 하자
수운水雲은 맑은 물 한 그릇을 가져오게 한 후
한참동안 묵도黙禱하고
이제는 안심하고 베라 하였네
수운水雲의 나이 향년享年 41세였네
청명하던 일기가 변하여
광풍이 일고 폭우가 내렸네.
하늘도 수운水雲의 죽음을 슬퍼했네.
수운水雲의 머리는 남문 밖 길가에
3일 동안 효수梟首되었다가
시신과 함께 가족에게 인도 되었네
수운水雲의 시신은
제자들의 도움으로 염습을 해
자인현慈仁縣 서쪽 후연점後淵店에서
3일 동안 머물렀네.
시신屍身에 온기溫氣가 있고
목 부분에 홍백선紅白線이 있어
회생할지 모른다는 소망은
시즙[屍汁=송장이 썩어서 흐르는 물]이 흘러내리자 깨졌네.
수운水雲의 시신은
구미산 자락 대릿골橋洞에 붇혔네
수운水雲의 참형으로
동학東學사건은 일단락 된 듯 했으나
수제자 해월海月 최경상崔慶翔을 체포하지 못한
관官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네.
수운이 체포된 후 며칠 후
영교營校와 옥리獄吏 50여 명이
해월海月의 거처를 포위하고 수색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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