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표작품 ]

연자시편 - < 바가지 > - 한국문학신문 5월 4일(제544)

高 山 芝 2022. 5. 12. 06:53

< 바가지 >

 

지난여름 한 일을

사람들은 알고 있네

 

양심을 긁는 바가지 소리

 

부앗김에 바가지 쓰고

서방질을 시작하네

 

전가의 보도인양 휘두르는

조자룡의 헌 창

 

바가지가 깨지네

설마가 사람 잡네

 

 

부앗김에 서방질 한다또는 홧김에 서방질 한다는 속담에는 담과 같은 일화가 있다. 홍 진사가 기생집에 들어서면 기생들은 서로 홍 진사를 차지하려고 버선발로 뛰쳐나온다. 여승도, 양갓집 규수도, 소리꾼도 홍 진사 앞에서는 사족을 못 쓴다. 이런 홍 진사에게 처음으로 문제가 생겼다. 이 마을 서당에 새로 부임해 온 젊은 훈장의 처의 자색이 때문이다. 예쁘기로만 치면 기생들이 낫지만, 훈장의 처에게는 그 이상의 뭔가가 있었다. 얼음처럼 싸늘하고 깐 밤처럼 말끔한데다 매화처럼 이지적인 자색이다.

 

훈장이 학동들에게 글을 가르칠 동안 훈장의 처는 수묵을 쳤다. 홍 진사는 훈장 처에게 반해 훈장님과 글한다는 핑계로 뻔질나게 서당을 들락거리며 수작을 걸기 시작했다. 멋모르는 훈장은 친구도 없이 외롭던 차에 좋은 술과 산해진미 안주를 싸 들고 오는 홍 진사가 반갑기만 했다. 어느 날 저녁엔 훈장과 술잔을 나누던 홍 진사가 방구석에 쌓인 훈장 부인이 친 사군자를 보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우와~ 이것은 걸작이요하며 펼쳐 들었다. “집사람이 심심풀이 삼아 수묵을 친 졸작입니다.” 훈장의 말에 홍 진사는 제게 파십시오하며 엽전 주머니를 놓고 한 점을 둘둘 말아 품속에 넣었다. 돈 받고 팔 만한 작품이 아니라며 마음에 든다면 그냥 가져가라 해도 막무가내다. 홍 진사가 가고 난 후에 훈장 부부는 주머니를 열어 보고 깜짝 놀랐다. 거금 백 냥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튿날, 훈장이 학동들을 가르칠 때 훈장 부인이 돈주머니를 돌려주려고 홍 진사를 찾아왔다. 홍 진사는 끝난 거래라며 돈주머니를 받지 않으려고 옥신각신하다가 훈장 부인의 손목을 잡았다. 하초가 뻐근했지만 참았다. 며칠 후, 밤에 훈장이 당숙모 문상하러 고향에 갔다는 걸 알고, 모른 척 술병과 육회 안주를 들고 서당을 찾은 홍 진사가 혼자 있는 훈장 부인의 손목을 잡았다. 홱 손을 뿌리치자 내친 김에 그녀를 안고 쓰러져 옷고름을 풀었다. 그녀는 은장도를 꺼내 들고 자기 목에 칼끝을 겨눈 채 싸늘한 눈초리로 홍 진사를 노려봤다.“알겠소. 알겠소.” 홍 진사는 뒷걸음쳐 도망갔다. 다시 며칠 후 학동 편에 서당에 오라는 훈장의 전갈을 받고, 안 가면 오히려 이상할 것 같아 홍 진사가 찾아가자 훈장이 반갑게 맞으며 고향에서 가져온 돔배기를 술과 함께 내놓았다. 술상을 들고 온 훈장 부인은 태연하게 홍 진사에게 가벼운 눈인사를 보냈다.

 

두 사람이 불콰하게 술이 오르자 홍 진사가 훈장 팔소매를 끌고 단골 기생집으로 갔다. 홍 진사가 기생어미한테 몰래 엽전 꾸러미를 두둑이 찔러주고 귓속말을 했다. 그날 밤 술자리를 끝내고, 초승달처럼 예쁜 청매가 훈장을 잡아 금침이 깔린 뒷방으로 데려가 온갖 기교를 다 부려 혼을 빼놓았다. 삼일이 멀다 하고 홍 진사와 훈장은 기생집을 찾았다. 훈장이 청매에게 푹 빠져버린 것이다. 나무토막처럼 반듯하게 누워 숨소리조차 감추는 부인과 달리 청매는 촛불을 켜 놓은 채 홑치마만 입고 그것으로 훈장 얼굴을 덮었다. 어느 날 밤 기생집에서 훈장과 술을 마시던 홍 진사가 여봐라, 훈장님이 혼자 왕림하시더라도 술값은 나에게 달아 놓아라.” 훈장은 혼자서도 자고 갔다. 훈장 부인은 투기를 내색하지 않았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날 밤, 훈장이 혼자 기생집에 가 청매를 끼고 술을 마실 때 홍 진사는 서당에 갔다. 훈장 부인 옷고름을 풀었을 때 그녀는 은장도를 꺼내는 대신 눈을 감았다. 홧김에 서방질을 한 것이다.

 

요즘 정치판을 보면 방귀 낀 놈이 성을 내는 형국이다. 재판 중이거나 수사를 받고 있는 피고인과 참고인, 피의자 또는 전과자인 의원 나리들이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 박탈하자는 법안을 발의한 법사위를 통과했다. 국민의 불편을 아랑곳 하지 않는다. 헌법에 저촉된다는 법학자들의 경고에도 무시한 다수당의 폭거가 국회의사당에서 연출되고 있다. 국민에게 뽑힌 선량(善良)이기를 포기한 모리배(牟利輩)들의 야합이다. 이들은 법무장관 한동훈 지명자에 대한 포비아를 검찰수사권 박탈이라는 위헌소지가 있는 악법(惡法)으로 방어막을 치려고 한다. 빈대 잡기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이들은 이미 선량이기를 포기한 야바위꾼이다. 일상생활에 도박성 행위를 개입시키는 것을 중국에서는 야바오(押宝압보)로 부른다.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자신들의 죄를 덮는 야바위꾼으로 변질된 선량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로막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