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구멍이 난 듯이 밤새도록 퍼 붙는 빗줄기 다
일요일도 작업을 해야 된다던 사장도 엄청나게 쏟아지는 비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덕분에 주일 성수를 할 수 있었다
바자회에서 독일제 중고 면도기를 샀다. 임집사가 500엔 만 받는다
전씨의 동생도 참석을 한 주일 낮 설교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노라(요15/9-17)"
제목의 말씀이다.
" 포도나무 비유로 시작된 본문에서 제자들을 예수님께 선택된다
예수님은 그들을 제자로 친구로 선택하시고 선택의 목적과 선택자들에게 주어진 특권에
대해 설명한다. 이것은 당시 제자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닌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이 된다
(1)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 - 위에서 밑으로 종적으로 내려온 하향적 선택의 주체는
주님이시다 . 많은 사람 중에서 12제자를 선택하셨다. 지원자를 받아서 선택한 것이 아니고
산에 가셔서 철야기도를 하신 후 예수님이 불러서 선택한 하나님의 행사였다
구약의 아브라함도 불러서 선택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인 창세전에
우리를 선택하셨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불렀고 우리는 대답을 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 만이 예수님을 믿게 된다.우리들의 믿음의 동기는 제각각이지만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에게 임하여 우리를 부르고 예수를 믿게했다
12 제자들도 유능하고 휼륭해서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어부이고 세리였다
세상의 미련한 자 약한자 멸시받는 자를 택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므로 강한 자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셨다.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작은 민족인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하나님이다. 겸손한 자를 들어서 사용하시는 하나님이다. 못나고 부족하고 무식하고 약하다고
낙심히지 말자 .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축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2) 선택의 목적 - 무엇 때문에 선택하였는가 ? 열매를 맺기 위함이다.
성령의 임재로 내적열매(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온유, 절재)을 맺는 기쁨충만의 열매와
성령의 임재로 얻어지는 권능의 사역 즉 전도라는 외적열매 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는
받은 것을 나누어주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장막짓는 일을 하며 전교하는 자비량선교사였다
우리도 복음의 사명을 갖고 일본에 파견된 선교사이다. 우리가 일본에 온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자신은 자비량 선교사라고 생각하면 피곤치 아니하고 오히려 은혜스럽다
일본인들의 친구가 되어주기 위하여 지금 여려분은 일을 하고 있다. 진정한 친구가 없는 사람은
사막에서 홀로 사는 사람과 같다. 진정한 친구는 부모 보다 낫다(서양속담), 내 평생 참된 친구를
만나지 못한 것이 유감이다(소크라테스). 참된 친구는 예수 뿐이다. 우리는 사랑을 종적으로 받았지만
횡적으로는 나누어 줘야한다. 교회는 사랑의 단체 다. 사랑은 교회의 단합과 임무수행의 에너지이며
예수님의 제자라는 증명서이다. 택함을 받은 자에게는 기도의 특권이 주어진다. 기도는 예수님과
교제를 나누는 유일한 수단이다.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모든 지원은 기도를 통하여 공급된다. 하나님 능력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 기도이지만 기도는 예수님
이름으로 해야한다는 조건이 붙어있다. 약하고 미련한 우리를 택하사 강하고 지혜로운 자로 세워주신
그 은혜에 감사드리며 찬양과 경배를 드리자 "
참 은혜로운 말씀이였다
저녁예배는 동경복음교회 김소익 목사님이 인도 하셨다. 김목사님은 이 교회를 개척하신 분이다
비단 포목장사로 김목사님의 신학공부 뒷바라지를 한 사모님. 지금 시무하시는 동경복음교회는
성도 수가 300여명으로 7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 섬기는 마음을 갖자(마7/12) " 제목의 김목사님 말씀이다
본문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이다. 톨스토이는 산상수훈의 말씀대로 살기를 힘썼다. 먼저 남에게
베프는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자기가 원치않는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공자의 가르침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상대적으로 이웃에 대한 적극적인 사랑을 강조한다
사람들은 전차를 타거나 식탁에 앉을 때 좋은 좌석에 앉기를 원하고 주목받기를 원한다.
자기주장과 자아 에고이즘이 강해 남을 섬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섬김 받기를 원할 뿐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섬기는 자세를 배워야 한다. 기독교는 받기만 하는 이기적인 종교가 아니다
하나님이 독생자인 예수를 보내어 우리 죄를 대속한 것은 소귿적인 섬김이 아니라 적극적인 섬김이다
내 뜻을 버리고 타인을 섬길 때 새로운 세계가 보인다. 이타심 - 남의 이익을 위하여 섬기는 것이
기독교 정신이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남 섬기는 자세의 솔선을 보였다
샌달을 신고 생활했던 유대인들은 여행에서 돌아오면 발을 씻는 풍습이 있었다
제자들은 피곤해선지 누구도 발을 씻지 않았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겨주었다
섬길 때도 우리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 친한 사람 만 섬길려해서는 안된다
예수님은 유다의 발도 베드로의 발도 똑같이 씻겨주셨다. 미운 사람이라도 그의 영혼을 불쌍이 여겨야한다
가깝고 친한 사람만 섬기는 것은 인간의 이기심 때문이다
섬김에는 3가지 축복이 따른다 (1) 섬김의 삶을 살면 우정을 얻는다. 더러운 발을 씻어줄 때 존경심이
생기고서로를 받아들인다. 사랑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허물을 덥는다
(2) 섬기는 일을 통하여 자신의 그릇이 커진다. 마음이 큰 너그러운 사람이 된다
싫은 사람을 섬기는 섬김이 가장 귀중한 섬김이다. 사랑의 영역이 확장되는 순간이다
너그러운 마음은 우리를 큰 인물로 변화시킨다 사랑은 모든 것을 초월한다
(3) 어려운 사람 이웃을 돕는 것이 된다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게한다
아무리 강팍한 사람이라도 사랑 앞에서는 무너진다. 이웃과 이웃이 되는 것은 다르다
주위에 많은 이웃이 존재하지만 관심이 없다면 참다운 이웃이 될 수 없다
이웃이지만 이웃이 될 수없는 이웃을 외면하는 위선적인 삶을 지금 우리는 살고 있지 않은가
이웃으로 만족하지말고 이웃이 되어주는 삶을 살자. 미운 사람의 이웃은 하루아침에 될 수가 없다
섬기는 마음을 갖고 한걸음 다가서면 변화가 일어난다
섬기는 것은 손해보는 행위가 아니다 성경은 섬기는 사람의 축복을 이야기 하고 있다
예수님도 섬기기 위하여 오셨다. 섬기는 사람에게서는 그리스도의 향기와 교회의 간증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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